[인생+] 코로나의 시간

남경아 <50플러스세대> 저자 2022. 6.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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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얘기를 해야겠다. 새로운 바이러스와 공존한 지 2년여 시간. 나는 우리 생애 처음 마주한 이 기간 동안 개인의 삶과 인식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코로나19는 나와 지인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강제 멈춤이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남경아 <50플러스세대> 저자

K는 백신 1차 접종 직후부터 심근염 증상이 나타났다. 검사상으로는 이상소견이 나오지 않았지만,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심장 조임, 숨 가쁨으로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느라 꽤 오랫동안 그녀의 몸과 마음은 무너졌다. 만성질환자인 Y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원까지 하며 고생했는데,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각이 완전히 돌아오질 않았다. 후각이 무뎌지니 미각뿐 아니라 몸의 감각이 전체적으로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나도 갱년기에 코로나 블루까지 겹쳐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J는 제법 탄탄한 여행사 CEO였는데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집을 포함, 재산 대부분을 처분하고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울화와 화병으로 그녀가 혹여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친구들은 걱정했다. 평소 걷기라면 질색했던 그녀였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미친 듯 북한산을 올랐다. 살기 위한 그녀만의 몸부림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새로운 기회를 잡아 다시 훨훨 날고 있는데, 이게 다 북한산을 걸으며 키워온 체력과 기도 덕분이라고 말한다. 30년 지기 친구 S는 눈만 뜨면 밖으로 돌아다니기로 유명했다. 살림, 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녀가 재택근무가 길어지자 난생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소품을 사서 집을 꾸미고 음식을 차려 친구들을 초대했다. 옷과 주얼리 쇼핑 대신 꽃과 화초를 사 모으며 새로운 취미로 조금씩 일상을 재무장했다.

내 주변만의 특별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변화를 겪으며 나와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우리를 지탱해 준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불안할 땐 언제든 전화해’ ‘병원 같이 가줄게’ ‘같이 걷자’ ‘언제든 집으로 놀러 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이런 말들이 오가고, 별거 아닌 것 같은 이런 말들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했다. 또 뿌연 시간 속을 헤매더라도, 스스로의 회복력을 믿고 소소하지만 단단한 일상을 채워갈 자신만의 스킬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번처럼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불완전한 한 인간으로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고독, 외로움을 다룰 각자만의 심리적 무기도 하나씩 길러야 할 것 같다. 그게 뭐가 됐던 말이다.

가끔은 반문해 본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과연 우리가 이런 생각이나 해 봤을까? 그래서 나는 지난 2년여 동안 다양하게 변주된 각자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겨놓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구체적 실천은 부족한 것 같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누구나 가끔씩 ‘잠시 멈춤’의 시간이 꼭 필요하고, 사회는 이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친구들 단톡방에는 이런 메시지가 올라왔다. “다들 털고 살자. 산에도 가고, 글도 쓰고, 술도 적당히 마시고, 화초도 쓰다듬고, 하늘도 보고. 천천히 음미하며 느리게 살자. 사는 게 뭐 별거냐.”

남경아 <50플러스세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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