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생활 속의 과학 수업

2022. 6. 2.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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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암기했던 '혀 맛지도'
100년이 지나 오개념으로 증명
정보의 홍수 속 바른 선택 위해
스스로 답 찾아가는 교육 필요

최근 신문에서 원형탈모 치료제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사이토킨 신호 전달에 중요한 인산화효소인 야누스키나제(JAK·Janus Kinase)의 억제제 계열 약물이 원형탈모 환자에게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보였다는 기사였다. 원형탈모증은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아 좀 더 연구가 필요하나,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던 JAK 억제제를 적용한 것이 원형탈모 치료제로 효과를 본 것이다. 이처럼 면역체계에 아주 중요한 JAK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프로테인키나제 시(PKC·Protein Kinase C)라는 인산화효소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필자가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JAK가 해야 하는 일을 PKC로 가정하고 수행한 실험들이 모두 긍정적인 결과로 학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상황에 적용해 보자면 PKC 억제제가 원형탈모증에 효과가 있다는 것인데, 이는 과학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이처럼 과학은 충분한 자료 검증과 준비를 통해 수립된 가설을 기반으로 정교하고 철저한 실험을 계획하고 수행하여도, 뒤에 오는 과학자들을 위해 빈틈을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

현재 우리는 정보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과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일 수없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해당 분야 전문가라면 이러한 정보를 과거와 비교하고 비판적으로 다시 검증하는 적극적 과정을 거치겠지만, 전문가가 아니라면 안타깝게도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에 최근 과학을 대중에 제대로 알리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매우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다만 검증된 정확한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의무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하겠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학원장 뇌과학과 교수
필자는 후각과 미각을 연구하는 연구자이다. 이 분야에는 가장 오래된 어처구니없는 신화가 있다. 바로 ‘혀 맛지도’에 관한 연구 이야기이다. 1901년 독일의 다비트 P 헤니히 박사는 혀의 맛자극에 대한 민감도를 다룬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발표한다. 그런데 1930년대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가 이 논문을 번역하며 결정적 오류를 범한다. 원 논문에서 각 맛자극에 대해 혀의 전체 부위는 모두 감지하지만 그 각 맛자극에 대한 민감도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제시했는데, 번역에서 이를 제외하며 민감도 차이가 마치 맛을 느끼는 차이인 양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이 내용이 신문에 공개되며 우리가 1990년대까지 알고 있던 혀 맛지도 신화가 탄생했다. 혀 끝은 단맛을, 약간 안쪽은 짠맛을, 그 뒤는 신맛을, 목구멍이 가까운 혀의 가장 끝부분은 쓴맛을 느낀다는 혀 맛지도가 그것이다.

이는 시험에도 많이 출제되니 반드시 암기해야 하는 내용이었다. 중학생 때 선생님께 배운 혀 부위에 따른 맛자극 암기법을 아직도 기억한다. 선생님은 혀 맛지도는 사랑의 과정과 같다며, 처음은 언제나 ‘달콤’하지만, 조금 지나 식어 씀씀이에 ‘짠돌이’가 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은 조금씩 ‘시큼’하게 상해가다가 늘 ‘씁쓸’하게 끝나게 된다고 기억하라 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분자유전학 기법이 등장하며 각 미각자극에 반응하는 미각수용체 발현을 조사한 결과, 혀에 전체적으로 모든 미각수용체가 발현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특정 맛자극에 반응하는 혀 맛지도는 없다는 것이다. 오역으로 뒤틀어진 발견이 100여년 만에 후배 과학자들에 의해 제대로 증명된 것이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과학 정보가 소개될 것이다. 비전문가들이 정보 홍수 속에서 바른 정보를 선택하는 것은 가능할까? 능동적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사실 과학자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관련된 자료를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 찾고, 서로 충돌하는 정보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정리하다 보면, 정보는 뇌 속에서 어느덧 자신의 확고한 지식으로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수업 과정을 반복하면 스스로 검증한 정보들이 쌓이게 되고 결국 정보 홍수 속에서도 자신만의 바른 정보 선택법을 갖게 될 것이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학원장 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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