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클래식의 정수는 작곡가

2022. 6. 2.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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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월간객석 발행인

5월의 날씨는 화가 손로원이 글을 쓰고 박시춘이 곡을 붙인 1953년의 노래 '봄날은 간다'를 생각나게 합니다. 꿈을 좇아 집 나간 아들을 그리다 홀로 숨져간 어머니에 대한 회한이 담긴 이 노래는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는 우리 인생의 봄날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도 계절의 여왕답게 사방에서 꽃들이 형형색색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마음마저 연분홍 빛으로 물들고 말지요. 이 아름다운 5월에 제 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는데, 축하공연의 선곡 문제로 뜻하지 않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영국인들이 '제2의 애국가'로 생각하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과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아리아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입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이 선곡을 지지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국가의 큰 행사인데, 한국의 전통음악이나 한국인이 작곡한 음악을 선정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는 입장도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5년마다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을 텐데 국민적 합의를 통해 한국적인 것으로 몇 곡을 미리 준비해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왕 내친김에 저는 그런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 위상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는 물론 오페라의 대가 베르디, 푸치니 등은 전 인류가 사랑하는 작곡가들입니다. 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의 이야기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곧 작곡가의 역사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우리도 우리만의 작품을 짓는 작곡과 작곡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만 정작 공연에 가면 상황은 영 다릅니다.

제가 '객석'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방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날의 곡목, 출연진 등이 담긴 프로그램북을 보았는데, 나이 어린 협연자는 물론 지휘자를 비롯해 공연을 만든 연주자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날 창작곡을 발표한 작곡가의 사진이나 소개는 없고 이름 석 자만 달랑 나와 있었습니다. 공연 후에 해당 작곡가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니 작곡가의 기분도 썩 좋아 보이진 않더군요. 자신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감격스런 시간이었는데도 말이죠.

몇 년 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작품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강석홀'로 개명된 KNUA홀에서 열렸는데, 공연장 로비에 붙인 포스터에는 연주하는 학생들의 사진만 있었을 뿐, 정작 창작곡을 발표하는 작곡가의 사진은 없더군요. 그분이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작곡가 중 한 분이었는데도 말이죠.

지난 5월 초에는 한국소극장 오페라축제(4.23~5.8) 페막식에 다녀왔습니다. 작지만 내실 있는 소극장오페라를 선보인 음악가들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날, 신진 성악가와 최우수 성악가상을 비롯하여 연출가상, 지휘자상 등을 발표했는데, 정작 오페라 작품을 만든 작곡가의 노고를 위로하는 작곡가상은 없었습니다.

창작오페라라는 장르가 버젓이 있고, 이를 통해 한국의 오페라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데, 작곡가를 격려하는 상이 없다는 게 참 안타까웠습니다. 다행히도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이를 지적하면서 내년부터는 작곡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저 역시 깊은 공감을 느끼는 발언이었죠.

'객석'에서는 젊은 작곡가들의 창작 세계를 지난 2년여 동안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저는 새로운 음악이 태어나는 과정과 그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좀 더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연주자들도 무대에 오르기까지 피나는 연습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작곡가가 존재하기에 연주자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늘 새로운 소리와 음악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연주자들을 위하여 우리는 작곡가들을 더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긴 고뇌 끝에 만들어내는 선율은 팍팍한 우리네 삶에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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