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박상기, 한동훈 그리고 업비트 이석우

2022. 6. 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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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동 금융부장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역사는 2018년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2018년 1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입법안을 준비 중이다"고 했다. 이른바 '박상기의 난' 이후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약 2년간의 겨울을 보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한 것은 물론이고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싱가포르 등으로의 탈출을 꾀했다. 이때 설립된 곳이 바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테라폼 랩스다.

권도형과 신현성이 설립한 테라폼 랩스는 두나무의 투자 자회사인 두나무앤파트너스를 비롯해 바이낸스 랩, 후오비 캐피탈 등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투자를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 암호화폐 공개(ICO)가 금지되다 보니 암호화폐 발행사 설립도, 암호화폐 투자도 싱가포르로 넘어갔던 것이다. 급기야 '루나·테라 사태'가 터지면서 2019년 국내에 설립됐던 테라폼 랩스 코리아는 지난 4월 30일 청산됐다.

정부의 암호화폐에 대한 적대 의식은 2018년 이후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른 암호화폐 거래소 등록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200개 정도 있지만 (기간 내 신고하지 않으면) 모두 폐쇄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은성수 전 위원장은 또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특정금융정보법 시행으로 암호화폐가 가상자산으로 법제화되고, 가상자산 거래소가 금융감독의 대상으로 편입되는 시점이었음에도 금융당국 수장이 가상자산 투자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가상자산 거래량이 주식시장 거래 규모를 웃도는 상황에서도 암호화폐를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지 않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조차 거부했던 것이다.

이처럼 가상자산 거래는 제도적으로 허용하면서도 투자자 보호 장치는 전무한 상황에서 터진 것이 '루나·테라 사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과 함께 부활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합수단)의 1호 수사 대상도 루나와 테라USD(UST)다. 합수단은 루나와 UST 폭락 사태로 고소·고발당한 권도형 테라폼 랩스 대표이사와 공동창업자 신현성씨, 테라폼 랩스 법인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루나·테라 사태' 이후 스테이블 코인인 UST의 알고리즘은 다단계 폰지 사기로 치부되고 있다. 테라의 가치가 1달러보다 떨어질 경우 테라를 루나로 바꿔준 후 테라는 소각하고, 다시 테라의 가치가 올라가면 루나를 테라로 바꾸고 루나는 소각하는 것이 UST 알고리즘의 핵심이다. 테라-루나 수요공급 체계에서 테라를 예치할 경우 연 20%의 이자를 지급하는 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해왔다는 게 폰지 사기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법정화폐의 제도적 신뢰를 루나라는 암호화폐의 가치로 담보한다는 구상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지만, 두 코인의 가치가 99% 이상 폭락하면서 신뢰가 무너져 버렸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이석우 대표가 최근 열린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과 코인마켓 투자자 보호대책 긴급점검' 간담회에서 "지금 관점에서 과거를 보면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고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당시의 테라는 혁신적인 코인으로 평가받았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표가 "가상자산 거래소가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시장 왜곡이 심해진다"는 지적도 새겨들을 대목이다.

테라·루나는 국내에서 발행된 암호화폐도 아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각각의 상장 심사 기준에 따라 상장과 상장폐지를 결정하는데, 단일 거래소같은 상장 체제를 갖추라는 것은 반시장적인 조치에 가깝다. 암호화폐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이 연동되어 있지도 않은데, 유통 시장에서 인위적인 개입이 유효할 지도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공약으로 가상자산 등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과 함께 국내 ICO 여건 조성을 내걸었다. 그렇지만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시가총액 톱10 내에 들었던 '테라'가 코인 사기로 치부되고, 가상자산 거래소가 "투기 조장행위"로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한국산 암호화폐가 세간의 주목을 다시금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 보인다.

'루나·테라 사태'의 책임을 가상자산 거래소로 몰아가기보다 가상자산 거래소 등록을 독려하면서도 투자자 보호 장치 마련에 소홀했던 금융당국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citize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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