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3. 횡성 강림 대우슈퍼

박창현 2022. 6. 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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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추 반세기 전으로 되돌린 듯..매대 위 켜켜이 쌓인 시골가게 정취
횡성 강림 농촌마을 구멍가게
1960년대 개업 2대째 운영
내복·필름..물건 가득 만물상
한땐 일매출 300만원 호시절도
'친절·구색' 경영철학 명맥 유지
슈퍼 자체 사장부부·마을 역사로

누구에게나 어릴적 국수 심부름을 다녔던 구멍가게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동네 골목길 한켠에 자리잡은 이른바 ‘○○상회’라는 잡화점은 어린시절 잊지못할 추억을 간직한 만물상이었다. 가게주인장은 누구네집 몇째 자식인지 동네주민 가족이력을 꿰뚫고 있는 마당발이기도 했다.

구멍가게의 묘미는 외상거래다. 주인장의 외상장부에는 온 마을주민의 별칭이 빼곡히 적혀있었고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한 외상거래의 흔적은 여전히 정겨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옛 정취는 골목상권까지 비집고 들어온 대기업의 24시간 편의점에 밀려 하나둘 자취를 감춰가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횡성 강림에서 60년 넘게 대우슈퍼를 운영해 온 장득현·이수옥씨 부부

어릴적 기억을 더듬게 하는 그때 그 향수를 간직한 60여년 역사의 동네 슈퍼가 있어 발길을 옮겼다. 횡성읍내에서도 승용차로 30여분거리를 달려 도착한 강림면 면소재지는 전체 인구 1700명 남짓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이곳에 노포(老鋪)의 흔적이 짙게 배인 빛바랜 함석지붕과 고풍스러운 간판의 외관을 지닌 구멍가게가 눈에 띄었다. 바로 ‘대우슈퍼’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유리새시문에는 여느 구멍가게가 그렇듯 ‘담배’라는 알림판이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신발, 필름, 낚시, 식료품, 잡화 등의 문구가 쓰인 투명유리 너머에는 60년째 대우슈퍼를 지키고 있는 이수옥(76) 할머니의 모습이 스친다.

샷시문을 열고 들어서면 머리 위로 목조 건축물의 뼈대가 훤히 드러난다. 1960년대 당시 한옥주택의 전형적인 형태인 삼칸 툇마루 구조가 정겹게 느껴진다. 60년을 지탱해 온 대우슈퍼의 역사를 보는 듯 하다. 10평 남짓의 내부 공간에 들어서니 과자,음료수,술,라면 등 여느 구멍가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식료품과 잡화들이 정갈하게 정리돼 있다. 또 한쪽으로는 족히 수십년이 넘을 듯한 나무책상에 놓인 계산대 풍경은 시계추를 50년 전으로 돌린 듯 예스럽다.

이수옥 할머니는 “현재 가게는 내 나이 16살때 목재를 세우고 흙벽에 니스칠을 했으니까 1961년쯤에 지은거 같아. 한때는 슈퍼에서 시외버스영업소도 함께 하면서 살림집을 운전기사와 안내양의 숙소로도 사용했지”라며 추억을 떠올렸다.

대우슈퍼의 전신은 덕인상회였다. 주인할머니의 친정아버지가 현재 자리의 동네가게를 인수해서 처음 문을 열었을때의 상호이다. 이때가 1961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아버지의 상술을 눈여겨 보다가 20대에 남편 장득현(84)씨와 결혼하면서 출가했다가 1979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대우상회’라는 상호로 바뀐 만물상의 주인장 딸로, ‘슈퍼우먼’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됐다.

할머니는 “1960년대초 처음 가게를 열었을때는 라면이라는 제품이 너무 생소해서 아버지께 자주 여쭤봤던 기억이 나요. 내복, 포목, 신발에다가 밀가루를 포대로 쌓아놓고 팔았어요. 술은 한대박씩 따라서 사갔고 상추 같은 야채를 키워서 싱싱하게 내놓으면 금세 팔려나가서 너무 신났어요. 석유도 팔고 없는게 없었어요”라고 회상했다.

대우슈퍼 전경

대우슈퍼의 원조 사장, 친정아버지의 기억도 잊지 않고 한마디 건넸다.

“아버지는 학교운동회가 열리면 리어카에 장난감과 간식거리를 잔뜩 담아서 학교운동장에 펼쳐놓았는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니까. 큰 자루에 싣고간 물품을 모두 팔고 돌아올때면 힘이 들어도 정말 즐거웠는데….그때가 참 좋았어요.”

대우슈퍼는 1970~80년대까지 마을주민도 많고 장터가 크게 열리면서 계속 성장했다. 마을경기가 좋다보니 인근에 유사한 잡화점이 6곳이나 생겨나기도 했다. 당시 장사수완이 좋은 아버지의 생활력에 이씨의 부지런함이 더해지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다. 마침 마을주변 유원지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낚시도구에 주류, 식료품까지 팔려나가 일매출 200만원~300만원을 올리기도 했다.

1990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가업을 승계한 장득현·이수옥 부부는 시대흐름상 제2의 변화를 꾀했다. 실내공간을 현대식으로 확장하고 나무 미세기문을 현재의 새시문으로 수리했다. 무엇보다 간판을 교체하면서 상호를 대우상회에서 현재의 명칭인 대우슈퍼로 고쳤다. 한시대를 풍미한 ‘○○상회’의 시대는 가고 1990년대 유행어처럼 동네 곳곳에 자리잡은 ‘○○슈퍼’의 시대에 맞게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반세기 가까이 동네점포를 운영하며 두 자녀를 키우고 생계를 이어왔지만 그 사이 농촌마을의 아이들은 도시로 떠나가고 학교도 문을 닫았다. 매출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대우슈퍼의 최대위기는 2010년 가게 코 앞에 농협하나로마트가 들어서면서 폐업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까지 처했다. 한때 동종업계 경쟁업소였던 동네슈퍼가 지난 10여년새 모두 문을 닫고 대우슈퍼가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할 정도다.

목조건축물의 흔적이 드러나는 대우슈퍼 실내 진열장

장득현 할아버지는 “자녀들이 이제 그만 하고 쉬라고 자주 권하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부인이 벌써 문을 열어놓고 물건을 정리하고 있어요. 허허~”라며 대우슈퍼에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그 동안 구멍가게 장사의 비결에 대해서는 첫째는 친절, 둘째는 구색이라고 강조한다. 가게공간은 작아도 물품구입 만큼은 경비를 아끼지 않고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물품을 충분히 준비해 구색을 갖춰야 한다는 경영철학이 담겼다.

이제 평일 대우슈퍼의 매출을 유지하는 물품이라면 담배 정도가 유일하다. 마트가 문을 닫는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나 손님을 기대할 수 있다. 본의아니게 오랜 기간 재고로 보관해 온 물건을 골동품상이 헐값에 사가기도 한다. 동네슈퍼 기능 보다는 오랜세월 함께 살아온 마을주민들의 사랑방이라고 하는게 더 잘 어울려 보인다.

이수옥 할머니가 1968년 당시 대우슈퍼 전신 덕인상회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이수옥 할머니는 “60년을 한자리에서 손님을 맞이하다 보니 까까머리 학생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자녀의 손을 잡고 찾아와 옛날얘기를 한참 할 때가 있어요. 나 역시 웃음이 절로 나와요. 그런 분들이 있어서 계속 가게문을 열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어서 문을 열 수 있는 날도 얼마남지 않은거 같네요”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60년 넘게 마을주민에게 생필품을 공급해 온 대우슈퍼는 그 자체가 장득현·이수옥부부의 일생이자 강림의 기록이다. 그 많은 시간 서민들과 동고동락한 추억의 필름이 이제 얼마남지 않을 듯 하다. 막을 내리는 그날까지 큰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박창현 chpar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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