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의 저널리즘책무실] 누구를 위하여 기사를 쓰나?

권태호 2022. 6. 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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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책무실]한겨레는 지금 '우리 독자가 누구인가'를 묻기보다 '시민들이 한겨레에 바라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계속 벼려나가야 할 것이다. 다만, 사람보다 앞서는 가치는 없다. 진보언론은 사실의 바탕 위에, 합리적 방법으로, 진보의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
지난달 24일 외부 미디어 전문가 및 시민들로 구성된 열린편집위원회가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권태호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한겨레>가 의식하는 독자는 누구인가.” 지난 5월24일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서 한 위원이 이렇게 물었다. 모든 언론은 기사를 쓸 때, ‘우리 독자는 어떻게 볼까’를 염두에 둔다.

‘독자’의 의미를 최대한 좁히면, ①소비자(consumer)다. 언론사가 만드는 재화(또는 서비스)에 직접 돈을 내는 사람이다. 한달에 2만원을 내고 <한겨레> 신문을 소비하는 독자들에게 늘 고맙다. 한겨레의 경우, 여기에 후원자와 7만 주주가 더해진다. 또 당장 돈을 내진 않더라도 한겨레 콘텐츠를 꾸준히 소비하는 ②이용자(user)들이 있다. 한겨레 누리집 방문자, 한겨레 페이스북 팔로어, 뉴스레터 구독자들이다. 일반 기업은 ①번과 ②번에만 집중한다. ①번은 기업의 현재를 지탱하는 이들이고, ②번은 기업의 확장 가능성과 미래를 담보하는 이들이다.

언론은 두가지를 더해야 한다. ③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와 ④시민(public)이다. 정치인, 관료, 기업인, 시민단체 등은 우리 사회를 바꿀 직접적인 힘과 영향력을 지녔기에 이들을 감시하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중요하다. 아울러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 사회의 공익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기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이들뿐이 아니다. 가장 큰 존재는 ①데스크다. 한겨레는 데스크의 영향력이 다른 언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기자의 자발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겨레 데스크도 인사·지휘권을 행사하며, 기자를 성장시키는 교육적 책임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기자들은 데스크의 지시와 기대에 부응하려 애쓴다. 또 하나는 ②출입처 ③타사 기자다. ②③번은 기자가 쓴 기사를 가장 눈여겨보는 전문가들이다. 이들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건 오디션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과 비슷한 기분일 수 있다. 일부 언론의 경우, 여기에 ④광고주 ⑤권력이 추가된다.

최근 들어 기자들의 인정욕구가 커지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기자가 되기 전까지 줄곧 칭찬받으며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자란 지적질하는 자인데, 오히려 기자가 된 뒤 온갖 지적질과 비난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때론 황당하거나 부당한 비난도 숱하다. 여기에 이제 신문을 꼼꼼하게 봐주는 전통적 의미의 독자들은 점점 줄어든다. 내가 쓴 기사, 내가 한 일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은 데스크이고, 외부로는 출입처, 타사 기자다. 자신도 모르게 이들로부터의 ‘평가’만을 자존감의 발판으로 삼을 경우, 정작 언론의 존재 이유이자 자신이 기자가 되려 했던 이유인 ‘시민’이 사라진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말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였다. 그때 그는 “조직을 사랑한다”고 했다. 조직에 최우선으로 충성하는 이들은 ‘조폭’이다. 기자가 조폭이 안 되려면, 닫힌 ‘조직’이 아니라 열린 ‘시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다만, 조직되지 않은 시민의 목소리는 단일하지 않다. 고민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어떤 이는 ‘한겨레가 편향적이고 정파적’이라 한다. 어떤 이는 ‘한겨레가 왜 민주당에 더 냉정하냐’고 한다. 한겨레 구성원들도 과거와 달리, 생각의 스펙트럼이 넓다. 우리 사회의 다원화와 다층성이 투영된 것이라 본다.

그날 한 열린편집위원은 이렇게 제안했다. “독자를 사람에 두지 말고, 가치에 두라”고. 그렇다면 한겨레는 지금 ‘우리 독자가 누구인가’, ‘우리 편이 누구인가’를 묻기보다 ‘시민들이 한겨레에 바라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계속 벼려나가야 한다. 다만, 사람보다 앞서는 가치는 없다.

지켜야 할 가치를 고수하고, 시대에 맞게 달라지는 가치에 발맞춰 나가면서, 한겨레를 애정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리는 마음도 지녀야 할 것이다. 독자들의 거친 목소리에는 다시 한번 돌아보고, 동의하기 힘들더라도 외면치 말고 팔꿈치로 독자를 쿡 찔러주는(nudge) 번거로운 서비스를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이란 일반 기업과 달리, 협의의 ‘소비자’보다 ‘시민’에 더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언론에 요구하는 것이자, 언론이 오래 사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에 진보언론은 또 정파적 편향성이 아닌, 진보적 편향성을 지녀야 한다. 다만, 사실의 바탕 위에 합리적 방법으로. ‘사실’보다 ‘진보 가치’를 앞세운다면, 그건 운동이지 언론이 아니다. 반대로, 사실과 합리성에만 치중할 뿐 가치 지향이 없다면, 그건 그냥 소식지이지 언론이 아니다. 사실만 똑같이 전달하는 것에 그친다면, 굳이 수많은 언론에 한겨레를 더할 이유가 있을까.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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