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2022 칸 영화제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것
한국 영화에서 CJ가 지닌 영향력 압도적으로 커져
새로운 두각 드러내는 이들 키우는 시스템 존재하나
[미디어오늘 성상민 문화평론가]
지난 5월 29일 소위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라 통칭되는 프랑스 칸 영화제가 폐막했다. 이번 영화제는 여러모로 영화인들에게는 뜻깊은 영화제였을 것이다. 2020년부터 퍼지기 시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칸 영화제를 비롯한 무수한 영화제가 큰 피해를 입은 가운데 극장에 사람을 받지 않고 비대면-온라인을 중심으로 열거나, 관객을 받더라도 엄격한 제한 조건 속에 소수의 관객만을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아직 완전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비하면 치명률이 급격히 낮아진 상황에서 이전에 열린 베를린 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가 그렇듯 칸 영화제는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영화제가 되었다. 여전히 마스크는 써야 했지만, TV나 컴퓨터 모니터, 스마트폰과는 또 다른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은 그렇게 가까스로 맥을 잇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화제가 된 것은 역시나 '한국 영화의 수상 소식'이 아닐까. 2019년에 칸 영화제의 대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의 '기생충' 같이 한국 영화는 칸 영화제의 상과 인연이 계속 있었지만, 올해는 조금 특별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제작한 영화 두 편이 상을 받았으며, 동시에 최초로 한국에서 제작했지만 한국인이 감독하지 않거나 한국인이 주연이 아닌 영화가 상을 받는 일이 함께 펼쳐졌다. 바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과 주연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이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은 '색, 계'와 '크로싱 헤네시'에 출연하며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홍콩 배우 탕웨이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물론 탕웨이는 이미 이전에도 현재는 남편이 된 감독 김태용의 2011년 연출작 '만추'에도 주연으로 등장하였으니 한국 영화 출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만추'는 포스터 및 크레딧 표기 상 공동 주연인 현빈의 바로 다음으로 나왔다면 '헤어질 결심'에서는 같은 공동 주연인 박해일을 제치고 가장 앞에 기재되어 있다. 그만큼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영화의 제작진이 탕웨이의 비중을 영화에서 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뜻하며, 동시에 그렇게 제작된 영화가 상을 받게 되었다.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는 한국 영화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감독은 이미 '아무도 모른다'나 이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어떤 가족'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일본의 감독으로 인식되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영화의 국적 분류는 단순히 감독이나 주연 배우가 누구냐로 갈라지지는 않는다. 영화를 비롯한 영상 미디어는 아무리 최저 규모로 제작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거액이 소요되는 영역이며, 필연적으로 직접적인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제작에 필요한 돈을 지급한 회사의 국적도 제작 참여국으로 간주된다. 이전에 박찬욱이나 봉준호가 헐리우드의 투자를 받아 연출했던 '스토커'나 '옥자'를 쉽게 한국 영화로 분류하지 않고, 넷플릭스의 전격적인 투자를 받으면서 제작한 뒤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는 것에 성공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역시도 한국에서 모든 제작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말하면 완벽히 한국 작품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것도 이에 기인한다.
'브로커'는 감독은 일본인이지만, 배우는 물론 제작사도 2021년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인수한 '영화사 집'에 투자, 배급사 역시도 CJ ENM이다. 한국 영화의 산업 구조에서 이미 구축한 틀 안에 단지 감독만 자국인이 아닌 사람을 불렀을 따름이다. 이렇게 자본의 국적과 실제 참여한 인물의 국적이 서로 엇갈리는 일은 할리우드나 일본, 유럽 같은 국가에서는 제법 흔하게 발생하는 모습이지만 한국 상업 영화에서는 주로 '곡성'에서 등장한 쿠니무라 준이나 '인천상륙작전'에 출연한 리암 니슨 같이 배우 단위에서만 제한적으로 벌어졌던 모습이다. 어떤 의미로는 한국 영화가 '브로커'의 제작을 통해 좀 더 다른 형태를 모색할 수 있게 되었고, 다시 그렇게 제작된 영화가 상을 받으며 하나의 인정 가치를 받는 모습이 된 셈이다.
이렇게 한국 영화 두 편이 사상 최초로 칸 같은 명망 높은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의 상을 받았다. 아직 코로나의 여파가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영화계에서도 완벽하게 가시지는 않은 상황에서 이 수상 소식은 여러 매체를 통해 성황리에 보도되었다. 지난 2월에 열린 베를린 영화제에서 홍상수의 신작 '소설가의 영화'가 2021년 같은 영화제에 출품한 '인트로덕션'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은곰상을 받은 것에 이어 (다만 2021년에는 각본상으로, 2022년에는 심사위원대상으로 은곰상을 받은 차이가 있다.) 또 다시 한국 영화가 주요 부문 상을 받은 것이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큰 자극이 되었으리라. 이제 한국 영화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 한류 또는 K-컬쳐를 퍼트릴 발 걸음에 나서면 되는 것인가.
한국 영화에서 CJ가 지닌 영향력 압도적으로 커져
하지만 낙관만 하기에는 좀 더 골몰히 들여다 볼 요소들이 여전히 산재해있다. 가장 두드러지게 볼 모습은 이번 칸 영화제의 수상 결과로서 한국 영화에서 CJ가 지닌 영향력이 더욱 압도적으로 커졌다는 지점이다. '헤어질 결심'도 '브로커'도 모두 감독. 배우, 제작사, 스태프는 전부 다르지만 한국에서 제작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공통점을 빼면, 모두 CJ의 영상 부문 계열사 CJ ENM의 투자, 배급이 이뤄진다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CJ ENM은 이전에도 한국 영화계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지녔지만, 이번 칸 영화제의 수상 기록으로 CJ ENM이 한국 영화에 놓인 위치를 스스로 입증했다. 그것은 바로 사실상 한국에서 유일하게 대중성이 진한 상업 영화부터, 상대적으로 '작가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는 작품까지 모두 제작, 투자를 소화할 수 있는 업체라는 점이다. 이는 다시 풀어 설명하자면, 작품성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흥행이 용이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박찬욱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이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 명망이 높은 감독을 모실 수 있고 여기에 탕웨이나 박해일, 이정현 ('헤어질 결심'), 또는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 이주영 ('브로커') 같이 유명하거나 연기력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으며, 대중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소재의 제작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는 업체라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CJ ENM은 사실상 유일하게 한국을 벗어나 해외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영상 사업체이기도 하다. 이전부터 일본, 아시아, 북미 등에 지니고 있던 네트워크에 더해 작년에는 미국 할리우드에 본사를 둔 영상 투자 업체 '엔더버 콘텐츠'(Endeavor Contents)를 인수해서 더욱 해외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바 있다. 이전 봉준호의 '기생충'이 프랑스 칸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대상을 모두 수상하며 한편으로는 CJ ENM의 이름을 어떻게든 알리려고 했던 것 같이, 이번 칸 영화제의 수상 기록도 대외적으로 CJ ENM의 명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허나 어찌되었든 CJ ENM의 성장은 곧 한국 영화의 성장이니, 이 확장적인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에도 쉽지 않다. CJ ENM이 계속 대내외적 기반을 착실히 다지고 있는 것과 달리 정작 CJ ENM이 발을 딛고 있는 국가인 한국의 영화 생태계는 더욱 허리부터 부실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소위 대형 배급사(CJ, 롯데, 쇼박스, NEW)가 아닌 중소 규모 영화 제작은 계속 위기였지만, 코로나 이전부터 서서히 중소 규모 영화 제작은 자취를 감추거나 또는 작년 유오성, 장혁 주연으로 제작된 액션 느와르 '강릉'처럼 B급 액션 영화 위주로 축소되는 경향에 놓여 있다.
당연히 이러한 주류 영화들이 아닌 독립, 예술 영화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그나마 올해는 엣나인필름에서 배급한 다큐멘터리 '당신이 조국'이 근래 17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결국 이는 역설적으로 이전 '다이빙벨'이나 '더 플랜' 등의 작품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얼마나 자극적인 소재를 골랐느냐에 따라 관객의 주목도가 좌우되는 상황이 더욱 확대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당신이 조국'은 첫 주 개봉관이 600개관인 등 일반적인 독립, 예술영화와는 의도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이를 제외하는 순간 올해 한국에 개봉한 독립, 예술영화 다수는 1만 관객도 넘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적인 관객층이 조직되지 않는 척박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CJ도 함께 근래 생태계가 척박해지는 것에 함께 일조했다. 비록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2004년 이래 CJ가 형식적으로라도 자신의 강한 영향력을 독립, 예술영화 부문과 함께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모습이었던 'CGV 아트하우스'가 2021년을 끝으로 부문을 해체하였다. 계속 상영관 자체는 남아 있으나 2020년 대학로, 2021년 압구정 일부, 2022년 구로, 소풍(부천터미널), 평촌 지역의 아트하우스를 차례로 폐쇄하는 등 점차 발을 떼고 싶은 기미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CGV가 아트하우스 조직을 없앤 즈음에 아이돌이나 유명 가수의 공연 실황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담당하는 'CGV ICECON'을 활성화시킨 것은 무척이나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CGV아트하우스가 유일하게 대기업 차원에서 독립, 예술, 저예산 영화에 대한 투자, 배급, 상영을 모두 전담하는 조직으로서 여러 논란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이 '아트적인' 이미지는 박찬욱이나 봉준호 같이 꾸준히 자신들과 함께 파트너십을 맺는 감독들의 작품으로 메꾸면 그만이라는 것을 그렇게 몸소 보여준 셈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행보를 지닌 신인들의 등장과 지속적인 작품 활동도 어렵게 되었다. 근래 지속적으로 해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상을 받는 감독인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는 모두 1990년대 초중반에 본격적으로 영화계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IMF와 닷컴 버블 붕괴를 거쳐 한국 영화의 기반이 주저 앉았을 때, 이들은 당시 영화계 진출을 노리던 CJ나 쇼박스(오리온그룹 계열), 롯데 등의 자본과 만나 상업 영화의 영역에서 주류 영화 만큼의 자본을 사용하면서도 최대한 자신의 뜻대로 영를 제작할 수 있는 매우 흔치 않은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에는 감독의 뛰어난 역량도 있겠지만, 동시에 당시 한국 영화계가 놓여 있던 구조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그리고 2022년 현재, 그 당시 두각을 드러낸 감독들은 지금도 계속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는 동시에 자신의 생각대로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그러한 기회는 딱 그 정도의 선에서 머물러 있다. 2013년 칸 영화제에서 '세이프'로 단편경쟁부문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병곤이나 '우리들'의 윤가은, '벌새'의 김보라, '윤희에게'의 임대형처럼 두각을 드러낸 신인 감독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으나 그 위의 단계가 사실상 CJ, 롯데 등의 대기업 영화 배급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스케일을 늘린 작업을 하고 싶다면 이에 '맞추는' 작품을 하거나, 아니면 더욱 영역이 좁아지는 독립, 예술영화의 영역에서 안간힘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비치온더비치'나 '밤치기' 등의 작품으로 주목받아 작년 CJ ENM의 투자를 받아 '연애 빠진 로맨스'를 개봉한 정가영 등의 사례가 간혹 존재하나, 일반적인 사례라 말하기에는 어려웠다.
전체는 커져도 가려진 부분은 고사하는 영화계 상황
이렇게 크기 전체는 커져도 겉으로 드러나는 간판 뒤에 가려진 부분은 고사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렇게 크기를 키운 간판으로 해외에 자랑을 할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그 간판은 족히 20-30년은 된 간판이며 새로운 간판은 제작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그렇게 순환의 고리가 깨진 상황에서 화려한 간판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 것인가.
대다수 언론들은 그리 주목을 하지 않지만, 영화제에는 화려한 주요 부문의 상 만큼이나 미래 활약할 감독들을 주목하는 여러 부문의 상이 존재한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는 신인 감독에게 수여하는 황금카메라상에 라일리 키오(대다수 한국 언론은 '라일리 코프'라 표시하고 있으나 이는 엄연히 잘못된 발음이다.)와 지나 감멜 공동 연출로 미국 원주민 보호구역에 사는 소년들의 삶을 그린 '워 포니'가 상을 받고, 다시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에는 고령화 사회 일본의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인 발상으로 그러낸 '플랜 75'의 하야카와 치에가 수상했다.
라일리 키오는 외할아버지가 전설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무게가 있으나, 배우 본인은 오히려 이 무게를 이용해 셀러브리티의 길을 걷는 대신 A24 같은 아트하우스 영화 전문 배급사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출연하며 자신만의 색을 만드는 한편 '워 포니' 등의 작품을 통해서 배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영화 감독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편 하야카와 치에는 다양한 단편을 만들면서 두각을 드러내다, 2018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주도한 신인 감독 중심의 옴니버스 프로젝트 '10년'에 참여하며 단편 '플랜 75'를 만들고 그 작품이 호평을 얻자 이를 장편으로 확장시켜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어떤 의미로는 기존의 간판에 머무는 대신, 새롭게 두각을 드러내어 빛 내려 하고 있는 모습들을 적절하게 주목하고 커갈 수 있게 하는 모습들이 이번 황금카메라상의 수상 목록에서 드러난다. 우리에겐 그런 순환의 시스템이 있을까. 그것이 올해의 칸이 한국에 진정으로 보여준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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