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세 개의 한국'
공정·정의 보편가치로 평가해야
주류 가치 회복 보여준 지방선거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미 상원 인준을 통과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의 부임이 늦어지고 있다. 대북 강경파인 그가 어떤 일정을 보내는지 알려진 건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 있다.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이라는 책을 읽었거나, 반드시 읽을 것이라는 점이다.
광복 이후 최근까지 남북한 역사와 갈등, 그 과정에 미국이 어떻게 간여했는지를 다양한 비화(秘話)를 섞어가며 중립적ㆍ객관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2015년 광화문 한복판에서 테러를 당한 마크 리퍼트 당시 미국 대사가 병실에서 읽어 화제가 될 정도로 한반도 정치ㆍ외교사의 필독서다. 초판과 개정판까지는 한국전 참전 미군 장교이며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인 돈 오버도퍼(1931~2015) 전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썼다. 두 번째 개정에는 로버트 칼린(75)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객원 연구위원이 참여했다.
기자는 2015년 와병 중이던 오버도퍼 교수 대신 칼린 위원을 워싱턴에서 인터뷰했다. 당시 한미 양국 정부 모두 김정은 체제가 곧 취약성을 드러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칼린 위원은 ‘북한이 쉽게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상식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굴러가는 체제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한국 기업은 생산성 때문에 개성공단에 숙련공을 배치하길 원하지만, 북한 당국은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은 인민이 경험하도록 수시로 교체하는 등 ‘두 개의 한국’은 완전히 다른 상식의 체제라고 설명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윤석열 정부의 등장을 지켜보며, 오버도퍼 전 교수가 생존해 있다면 ‘세 개의 한국(The Three Koreas)'으로 책 제목을 바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못지않게, 대한민국 내부도 양립할 수 없는 상식의 두 집단으로 쪼개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대선 여야 후보를 놓고 극렬하게 대립했던 이들은 경제 성장, 대북 정책, 주변국과의 관계 등에서 상반된 인식과 해법을 원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한쪽은 러시아에 맞선 영웅으로, 다른 쪽은 강대국 심기를 건드려 국난을 자초한 얼치기로 본다. 조국 사태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괴리가 심하다. 느닷없이 김포공항 이전이 6·1 지방선거의 쟁점이 됐던 것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세 개의 한국’ 사이에는 우열이 없는 것 아니냐는 회의와 의심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편협한 ‘문화 상대주의’에 불과하다. 아랍ㆍ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여성에 대한 명예 살인이나 조혼 풍습이 문명세계의 ‘보편적 가치’에 의해 부인되듯, 남북 사이에는 명백한 우열이 존재한다. 독재자를 위해 시민 기본권이 부정되는 체제의 상식은 부정돼야 한다. 칼린 위원도 북한의 지구력을 인정하면서도 체제 경쟁에서 한국이 승기를 잡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보편적 가치는 남남 사이에서도 평가 기준이 된다. 눈앞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대의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렸거나, 경쟁자를 비방했던 논리를 스스로는 회피하거나, 아침에 내놓은 해명을 저녁에 뒤집는 일을 반복할수록 인간 존엄, 생명존중, 자유와 평등, 공정과 정의라는 잣대에서 멀어진다.
1일 치러진 지방선거는 그래서 고무적이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보편적 가치가 한국 사회 주류 가치로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국민은 제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Every country has the government it deserves)'는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말대로라면, ‘세 개의 한국’이 다시 ‘두 개의 한국’이 될 가능성(북한 체제가 건재하다면)도 그만큼 커졌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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