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72〉국민이 공감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을 개발하자
탄소배출 저감은 세계적 현안이며, 에너지 부문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대세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안정적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탄소배출이 거의 없는 원자력 이용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이용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유럽연합(EU)은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인정한 택소노미(Taxonomy)를 공표했고, 미국은 경제성과 안전성을 혁신한 소형모듈원전(SMR) 개발과 이용으로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고자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탈원전 정책을 폐지하고 원자력 이용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 이용은 안전성과 사용후핵연료라는 두 가지 현안에 대해 국민 수용성이 낮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안전성은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접목한 가동 원전의 운영 성과로 점점 강화돼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는 안전관리 방안이 확립되지 않아 여전히 국민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능 독성으로 말미암아 인간 및 생태계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경수로 사용후핵연료는 질량으로 약 93%이고 방사능은 전체의 0.001% 미만인 우라늄이 대부분이며, 방사능과 발열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우라늄 원소와 세슘·스트론튬은 각각 질량으로 1.40%와 0.53%로 구성돼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 독성은 수만 년이 지나야 천연우라늄광 수준에 도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사용후핵연료를 격리하는 방안으로 심지층에 사용후핵연료를 묻는 '직접 처분' 또는 사용후핵연료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성분을 회수해서 독성이 적은 물질로 핵종 변환하고 나머지를 처분하는 '처리 후 처분'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원전 운영국은 각국의 기술 수준,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국민 수용성에 따라 직접 처분, 처리 후 처분 또는 기술 진보를 기다리며 결정을 유보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직접 처분은 방사능 물질이 생태계에 도달하지 않도록 사용후핵연료 자체를 공학적 방벽으로 싸고 이것이 기능을 잃더라도 심지층의 천연 방벽이 기능을 수행하도록 지하 500m 아래에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만들어서 처분하는 개념이다.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 독성이 천연우라늄광 수준이 되는 데 수만 년이 걸리므로 직접 처분은 이 시간 동안 방사성 물질이 처분장에 격리된다는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의 제시가 필요하다. 국내 연구진은 이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기술 실증에 필요한 지하연구시설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 이용이 확대되면 사용후핵연료의 발생량은 증가할 것이다. 처분장에서 사용후핵연료의 발열량이 처분 밀도를 제한하고 있어 더 많은 처분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기술개발도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후 처분은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서 우라늄과 초우라늄은 핵연료로 재활용, 발열량이 큰 세슘과 스트론튬은 300년 동안 보관, 나머지는 고준위폐기물로 포장해서 심지층 처분하는 개념이다. 이 기술은 고준위폐기물의 부피와 발열량도 줄여 고준위폐기물의 심지층 처분장 크기를 줄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로서 프랑스에서 상용화된 습식 공정 기술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분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선택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나라는 플루토늄의 분리가 어려운 파이로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핵확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미국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공학적 규모의 기술적 타당성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파이로 공정 기술은 실증이 필요하며, 이와 더불어 회수된 우라늄과 초우라늄을 핵종 변환하는 원자로의 개발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를 더 이상 재활용하지 않고 고준위폐기물로 지정하는 정책 결정을 유보하고 안전관리를 위한 해답을 찾기 위해 두 가지 기술 모두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은 궁극적으로 국민이 공감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의 실증은 국민이 비교·선택할 수 있도록 우선해서 추진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국민 수용성을 결정하면 원자력 이용 확대와 탄소배출 저감 목표 달성에 사용후핵연료라는 장애 요인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박병기 순천향대 에너지환경공학과 교수 byunggi@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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