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은 강한나의 바람처럼 진짜 성군이 될 수 있을까('붉은 단심')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6. 1. 11: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붉은 단심'이 보여주는 정치인의 기본 조건

[엔터미디어=정덕현] "나는 누구에게도 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원한을 갚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할지. 나는 대감과 같은 길은 가지 않을 것입니다."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서 당신의 원수가 누구냐고 묻는 박계원(장혁)에게 유정(강한나)은 그렇게 선을 긋는다. 생각하기에 따라 유정의 원수는 박계원과 반정공신들일 수도 있고, 힘없는 왕으로 자식을 지키기 위해 유정의 아버지 유학수와 그 가문을 몰락시킨 이태의 아버지 선종(안내상)일 수도 있었다.

당시의 실제 상황을 알게 된 유정은 그러나 정치 보복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다. "아버지께서 가지 못한 길, 스승님께서 피하셨던 길. 전하의 곁에서 전하를 성군으로 만들 것입니다. 내 하늘의 하늘이니 모신다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 것입니다." 그러자 박계원이 다시 묻는다. 이태가 과연 성군의 자질이 있느냐고. "자질이 없는 자가 감당 못할 권력을 쥐면 결국엔 폭군이 될 뿐"이라고. 하지만 유정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애초 성군이 될 기회 자체를 억압한 것이 공신들이라며.

그렇다면 유정은 무엇 때문에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걸까. 그건 과거 저잣거리에서 이태가 왕이란 사실을 모르고 보름에 한 번씩 만났던 때, 유정이 했던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궁에 논을 일군다면 한해 농사의 풍, 흉년을 알아 백성들을 더 헤아릴 수 있을 텐데... 언젠가 그럴 수 있는 날이 있겠지요?" 당시 이태는 그 말에 부정적이었다. 궁에 논을 일군다고 또 기우제를 올린다고 비가 오지는 않는다고 한 것. 하지만 유정은 백성들도 그걸 알고 있다며 다만 "그렇게라도 매달리고 싶은 마음"일 거라고 했다.

이태는 무슨 이유에선지 그 때의 그 말들을 떠올리고 궁궐로 농부들을 불러들여 화단이 아닌 논을 일구게 한다. 그 곳을 찾아간 이태는 올해도 흉작이라는 농부의 말에 "과인이 나서서 기우제라도 올려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농부들은 너무나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해한다. 그 모습이 어리석게만 보이는 이태는 기우제 올린다고 비가 내리진 않는다고 하지만, 나이든 농부는 왕이 정성을 보이는데 하늘이 외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문득 이태는 농부에게 고개를 들라며 그 거칠게 상한 얼굴과 손을 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생겼구나. 어찌 너희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일까." 궁궐 안에서만 살아가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매일 매일을 싸우다보니 정작 민초들을 살피지 않았다는 깨달음이었을까. 이태는 농부들과 함께 기쁜 얼굴로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이런 이태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유정은 아마도 그 때 생각했을 게다. 그가 어쩌면 성군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붉은 단심>이 보여주는 이 농부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는 지금껏 이 드라마가 그려온 왕과 공신들 사이의 팽팽한 권력 대결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며, 그런 정치 때문에 정작 민초들이 얼마나 고통 받는가를 말해준다. 기우제로 비가 내릴 수는 없지만, 그 행위에는 정치인이 민초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 마음이 비가 되어 쩍쩍 갈라진 민초들의 얼굴과 손에 내릴 때 그 주름들은 잠시라도 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제 권력에 취해 자신의 위치가 어떤 지도 모른 채 자신만의 편안함과 욕망만을 추구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궁궐 안에 일궈놓은 논에 인분을 비료로 뿌리는 농민들을 보며 그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고, 자신의 꽃밭을 망쳐놓은 것에 대노하며 혹여나 냄새가 배었을까 옷을 벗어 버리라 명하는 대비 최가연(박지연)이 그렇다. 그는 대비지만 박계원을 연모하여 사적인 욕망만을 추구한다. 결국 욕망이 도를 넘어 그는 유정을 시해하려는 시도에 가담하고 결국 궁궐에서 축출된다.

과연 이태는 유정의 바람처럼 성군이 될 수 있을까. 그는 복수심에 불탔고, 공신들과의 권력 다툼 속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국혼까지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유정을 통해 그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 정치가 단시 권력을 잡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짧은 이야기지만 지방선거에 유권자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투표하고 선택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