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과연 '얼음과 불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인공태양이라는 단어나 연구 결과를 종종 미디어에서 접하면 혹시 언젠가 사라질 태양을 대체하기 위해 만드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공장기는 인간 장기를 대체하고, 인공호흡은 스스로 할 수 없는 호흡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니 말이다. 하지만 인공태양은 1억5000만㎞ 떨어진 곳에서 밝게 빛나는 태양을 대신하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방법 자체도 쉽지 않겠지만, 목적 자체가 태양을 대체한다기보다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를 지구에서 얻으려는 것이 더 크다.
우선 핵반응으로 에너지를 얻는 인공태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면 대표적인 핵반응인 핵분열과 핵융합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핵분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원자력발전의 원리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무거운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가벼운 원자핵 2개로 분열되고, 이때 에너지가 나온다. 반대로 핵융합은
2개의 원자핵이 융합돼 더 크고 무거운 원자핵을 만드는 반응을 말한다. 같은 원리의 반응이 태양에서도 일어나고 있기에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인공태양이라고 부른다. 신기하게도 핵분열과 핵융합 모두 결과물의 질량은 항상 이전보다 작으며, 이렇게 줄어든 질량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E=mc2)을 따라 에너지로 전환된다. 빛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아주 작은 질량이라도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등가교환돼 나타나는 것이다.
핵분열을 통한 원자력발전은 정말 훌륭한 에너지 원천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에너지 가운데 30% 이상은 원자력발전에 의존하고 있으며, 온실기체를 거의 배출하지 않아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도 적다. 하지만 핵분열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결과적으로 분열된 생성물들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지속적인 붕괴 과정을 거치며 방사선을 내뿜는다. 당연히 잘 관리된 시설에서 방사선이 배출되는 건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처럼 자연재해로부터 이어지는 대형 사고는 인류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 기왕이면 방사능이 배출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전력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을 찾아내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영화에서는 이미 현실처럼 다뤄진 적이 있다. 바로 마블 영웅물에 등장하는 아이언맨이다. 그의 가슴 부근에는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아크 원자로가 달려 있는데, 여기에 쓰인 기술이 바로 핵융합, 인공태양이다.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인공태양을 만들어내려고 노력 중이며, 성공한다면 방사능에 대한 문제 없이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되리라.
불가능한 상상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고민
방사성동위원소인 우라늄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수소를 결합해 헬륨을 만든다는 발상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여기에 필요한 중수소 원자는 다행히 평생 쓸 만큼 바다에 있으며, 바닷물 1t으로 만든 핵융합 에너지는 석탄이나 석유 270t으로 만들어낸 에너지와 같을 정도로 효율이 높다. 문제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태양과 같은 환경을 지구에서 만들어내는 일이다. 서로 너무 싫어하는 원자핵들을 융합시키려면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보통 고체를 아주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액체와 기체를 거쳐 플라스마라는 상태가 되는데, 이때가 가장 격렬하게 움직이는 순간이라고 봐도 좋다. 이렇게 핵들이 서로 부딪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히 움직이게 만들거나, 아니면 아주 좁은 방에 가둬 서로 짓누를 수 있도록 높은 압력을 가해야 핵융합이 일어난다. 질량이 대단히 큰 태양은 높은 압력 덕분에 중심부 온도가 1500만 도에만 도달해도 핵이 융합할 정도가 된다. 질량이 작은 지구에서는 압력이 훨씬 약하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어디에 둘 것인지다. 핵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뜨거운 온도는 유지하되 주변 환경이 버틸 수 있어야 기술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한국 연구자들은 2007년 독자 개발에 성공한 한국형 핵융합 연구로 'KSTAR(케이스타)'를 통해 이를 시도하고 있는데, 여기에선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이 가장 차가운 그릇에 담겨 아주 가까운 거리를 두고 공존한다. KSTAR 장치 내부에서는 1억 도의 초고온 플라스마가 발생하며, 플라스마를 가두는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초전도자석은 영하 269도 상태가 된다. 진정한 얼음과 불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도넛 모양의 토카막(tokamak) 장치를 떠올려보자. 내부는 진공 배기 장치로 공기를 완전히 빼내 우주와 비슷한 극도의 고진공 상태로 만들고, 장치 외부의 초전도 코일을 이용해 토카막 내부에 아주 센 자기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안에 가스를 집어넣어 플라스마 상태를 만든 뒤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보는 것이다. 복잡한 외부 가열 장치를 통해 1억 도까지 가열하면 내부에서 플라스마를 형성한 입자들이 서로 융합 반응을 하기 때문에 핵융합 반응을 제대로 실험할 수 있다. 한국 연구진 역시 수많은 가열 장치를 실험한 끝에 플라스마 온도를 1억 도까지 가열해냈고, 이후 무려 30초 동안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올해는 50초까지 유지하며 운전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다.
정말 인공태양에서 전기 얻을 수 있을까
차가운 초전도자석을 만들 때는 냉각에 주로 쓰이는 액체 헬륨을 이용한다. 헬륨 분배 장치를 통해 초전도자석 내에 액체 헬륨을 정교하게 전달하고 아주 낮은 온도를 유지한다. 또한 병원에 가서 몸이 아프면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이나 청진기 소리 등으로 진단하는 것처럼, KSTAR에도 유사한 진단 장치가 존재한다. 겉으로는 장비가 돌아가는지 혹은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기에, 2D 영상으로 플라스마를 촬영해 내부에서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KSTAR는 많은 부분에서 한국 기업들의 독자적인 연구 성과가 반영돼 결과물이라 국제적으로도 대한민국 기술력이 인정받고 있다.
향후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과 범접하기 어려운 난도라는 점 때문에 한국을 포함해 세계 7개국이 모여 KSTAR와 형태, 모양이 비슷한 초전도 토카막 연구 장치를 프랑스에 짓고 있다. KSTAR 장치보다 가로와 세로, 높이가 각각 3배씩 늘어나 부피가 27배인 토카막이 2025년 완성될 예정이다. KSTAR 장치와 중요한 연관성을 가진 데다 거의 유사한 모양이라, 아마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한국 연구자들이 이룬 성과들을 바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서 실질적인 핵융합 발전이 가능하고, 충분히 효율적이면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검증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그다음은 핵융합발전소를 지어 실생활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전기를 만드는 단계다. 아직은 핵융합에 의해 플라스마가 만들어내는 열로 전기를 생산하진 못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플라스마에 투입되는 것 이상으로 얼마나 많은 열에너지가 방출되는지 최초로 확인하는 시범 핵융합발전소(DEMOnstration Power Plant·DEMO)도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는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던 태양의 일부분을 이제 지구에서 만들어내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유한 기술들을 종합적으로 구현해 정말 인공태양으로부터 전기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에너지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도 있다. 물론 극저온과 초고온이 공존하는 상황처럼 도무지 떠올릴 수 없는 아이디어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두려울 이유는 없다. 이미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얼음과 불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유한,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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