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한국영화에 도전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낯설다 [시네마 프리뷰]

정유진 기자 2022. 6.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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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스틸 컷 © 뉴스1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치로 만든 스시는 어떤 맛일까. 영화 '브로커'를 본다면 그 맛을 상상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번째 한국 영화는 보편적이고 따뜻한 주제의식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반면, 한국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분위기와 캐릭터로 낯섦을 느끼게도 한다. 그것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는 관객의 몫이다.

지난달 31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베이비 박스 때문에 의도치 않게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비가 오는 늦은 밤 베이비 박스 앞에 아기를 두고 떠나는 싱글맘 소영(아이유 분)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소영을 지켜보는 눈은 생각보다 많다. 먼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버려진 아이들의 부모를 찾아주는, 자칭 선의의 브로커 상현(송강호 분)과 그의 파트너 동수(강동원 분)가 있다. 보육원 출신인 동수는 베이비 박스 교회의 직원이면서도 상현을 도와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들을 빼돌린다. 거기에 여성청소년과(여청과) 형사들인 수진(배두나 분)과 후배 이형사(이주영 분)도 있다. 두 사람은 아기 브로커인 상현과 동수를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 잠복 수사 중이다.

수진은 소영이 밖에 두고 간 아기를 베이비 박스 안에 넣어둔다. 그리고 브로커인 상현과 동수가 아기의 구매자를 가능한 빨리 만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던 중에 소영이 아기를 되찾기 위해 이튿날 교회로 돌아온다. 이미 아기와 관련한 기록은 동수에 의해 삭제된 상황. 동수는 허탈하게 자리를 뜨는 소영을 뒤따라가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이제 상현과 동수, 소영 세 사람은 함께 아기를 키워줄 구매자를 찾아나선다. 불법인 만큼, 아이를 넘기면 거액의 사례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남자 아기는 1000만원, 여자 아기는 800만원이다. 아기 우성을 버렸다 다시 찾으러 온 소영은 사례금 얘기 때문인지 마음이 흔들려 상현, 동수와 동행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들은 아기를 무사히 팔 수 있을까, 혹은 수진과 이형사는 브로커들을 체포할 수 있을까.

영화는 소영과 아기 우성 동수 등으로 대변되는 '버려진 아이들', 그리고 그런 그들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두 인물, 상현과 수진까지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아이를 팔아넘겨 돈을 벌려는 사실상 범죄자인 상현과 인신매매 브로커들을 체포하고자 하는 경찰 수진은 일견 전혀 다른 인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상현은 진심으로 아기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기를 바라는 인간적 인물이며 수진은 싱글맘들을 비난하고 경찰로서의 개인적 욕심을 위해 브로커들의 거래 성사만을 기다리는 냉정한 인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버려진 아이들'을 대하는 세상의 두 가지 보편적 시선을 잘 보여준다. 이용하거나 혐오하거나. 이 두 인물의 관점이나 태도는 이들이 소영과 우성, 동수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여정에서 흔들리고 뒤엉킨다.

'브로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스럽다. 의미를 넓여 말하면 다소 일본스럽다. 상현부터 소영까지. 대부분의 인물들이 지극히 온화한 한편 아무렇지 않게 지독하고 잔인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이들로 그려졌다. 직설적이고 무뚝뚝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약한 면모를 드러내는 한국식 캐릭터들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미묘한 정서적 이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종종 문어체 대사가 들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본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특유의 정제되고 완미한 톤앤매너는 다소 퇴색됐다. 대신 영화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유머가 귀엽고, 극의 말미 직설적인 메시지가 등장하는 결정적 시퀀스는 세련된 연출 덕에 뭉클한 감동을 준다.

어쩔 수 없이 한국풍의 일본영화이거나 일본풍의 한국영화다. 장편 상업 영화에 데뷔한 아이유(이지은)는 여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제도권 밖으로 점점 더 밀려나가버리는 상현의 캐릭터는 '기생충'의 기택과 조응한다. 송강호는 선과 악이 공존해 있는, 그래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인물을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영화의 결론이 주는 묵직한 여운은 송강호의 캐릭터 상현에게서 나온다. 러닝타임 129분. 오는 8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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