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100일간의 악전고투에도 돈바스 결국 러에 넘어가나
소모전 속 러 손실 키우려는 美 전략은 변수.."바이든 손에 달렸다"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올해 2월 24일 새벽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6월 3일로 100일을 맞으면서 그 전개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초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남·북부 3면에서 진격해왔지만, 3월 말 사실상 마지막 평화협상에서 퇴각을 예고한 뒤 4월부터 실행에 옮겼다.
이에 지난달부터 두 달간 전투는 동부 돈바스 지역과 남부 항구도시에 집중돼 있다.
도네츠크주(州)와 루한스크주를 아우르는 돈바스는 러시아가 2014년 크름(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나간 뒤부터 친러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이 내전을 벌여온 지역이다. 러시아가 반군을 경제·군사적으로 지원해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고, 주민들에게 러시아 여권도 발급해왔다. 이에 우크라이나에서도 반러 감정이 고조되면서 돈바스 지역 러시아계 주민에게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일부 탄압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하기 직전인 2월 15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전쟁을 원치 않지만 돈바스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전쟁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그로부터 6일 뒤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 분리주의 세력이 반군 점령지에 일방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특히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전체 지역을 그 영토로 명시했는데, 실제 반군 점령지는 각 3분의 1가량에 불과해 우려를 높였다.
그리곤 사흘 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해방'을 내세워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전장을 돈바스로 좁히면 이미 침공은 100일 전인 2월 21일 시작된 셈이다.
◇위태로운 돈바스 전황…루한스크 전역 '사정권'
돈바스에서도 러시아 영토에 좀 더 가까운 루한스크는 이제 전 지역 점령이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 20일 군부이사회에서 현지 전황에 대해 "군은 지역 민병대와 함께 돈바스 영토에 대한 통제력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며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은 해방이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밤사이 러군의 포격으로 민간인 13명이 숨졌다고 밝혔는데, 그중 12명이 세베로도네츠크시(市)에서 공격을 받아 경각심이 높아졌다. 당시만 해도 러군이 우세를 보이지 못했는데, 진격을 강화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세베로도네츠크는 돈바스 주요 산업 도시이자, 내전 기간 루한스크시를 대신해 임시 주도 역할을 해온 핵심 지역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돈바스 교전이 최대로 격렬해졌다"며 "전쟁 상황이 지금까지 중 가장 치열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29일에는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 중심부로 진격했다는 소식이 하이다이 주지사 텔레그램을 통해 전해졌다. 하이다이 주지사는 퇴각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까지 해왔는데, 이제 지역 주요 기반 시설이 붕괴되고 주택도 60%는 전손돼 복구 불능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세베로도네츠크가 함락되면 러시아는 루한스크주 전체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에 우크라이나군도 격렬한 저항이 예상돼 마리우폴 때처럼 치열한 소모전이 펼쳐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도네츠크주에서는 세베로도네츠크에서 멀지 않은 도시 바흐무트가 집중 포격을 받고 있다. 바흐무트는 돈바스 우크라군에게 공급되는 무기와 탄약 수송 허브 역할을 하는 군사 중심지다. 돈바스에서 북동부 하르키우를 거쳐 키이우까지 고속도로가 연결된 교통 요충지다.
또 행정적 중요 도시이자 철도 허브인 라이만도 러군에 점령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28일 러시아 국방부는 라이만 지역을 통제하고 있으며, 이로써 이웃 도시 슬라뱐스크 진격이 수월해졌다고 밝혔다. 슬로뱐스크는 우크라이나 내전 중 친러 반군이 장악하다 정부군에 빼앗긴 지역이다.
◇서방도 지친 기색…"영토 떼어줘라" 주장도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국가들은 전쟁 초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가 굳건한 항전을 이어가자, 전쟁 물자 공급과 정보 제공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면서 조금씩 서방의 단일대오에도 균열이 가는 모습이다.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미권 외신들에 따르면 이달 들어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 외교가에선 속속 '이제 유럽 안보를 지속할 수 있는 협상을 푸틴과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협상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강행 직전까지 요구했던 안보 협상과 관련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동유럽국가가입) 중단을 보장할 법적 구속력 있는 안보 보장과, 서방이 나토의 현상 유지를 약속한 1997년 나토창설법을 깨고 가입시킨 동유럽 국가들에 배치된 나토 무기와 병력 철수를 요구했었다.
현대 최고의 '외교 전략가'로 꼽히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지난 23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현실을 인식하고 영토 일부를 내주더라도 러시아와 평화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8일 각각 푸틴 대통령과 통화했다. 두 정상은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 설득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는 '협상가능한' 솔루션을 제시하라고 압박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를 2월 24일 이전 상태로 탈환해야 휴전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2014년 병합된 크름반도도 되찾아야 하지만, 일단 이번 전쟁 새롭게 점령된 지역은 수복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군 고위 관계자의 공개 발언을 통해 이미 전략 목표를 밝혔다. 남부 크름반도에서 동부 돈바스를 잇는 육로와, 동남부에서 몰도바 친러 분리주의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잇는 육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첫 번째 목표 달성이 임박한 상황으로 관측되는 만큼, 돈바스 방어 여부와 그 과정에서의 러군 손실 규모 등이 남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으론 전쟁을 일으키는 러시아도 곤란에 빠진 건 마찬가지라는 관측도 나온다.
◇소모전 치닫는 러…승자 예측 불허
AP 통신은 지난 24일 "전쟁이 3개월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렁에 빠졌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한번 키이우 등 북부에서 후퇴한 러군이 동남부로 전장을 좁혀도 쉽사리 돈바스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다.
러시아 강경파 사이에선 이제 대규모 동원과 자원의 집중이 없으면 이번 전쟁에 이길 수 없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AP에 따르면 2014년 분리주의 세력을 이끌었던 전직 안보 장교 이고르 스트렐코프는 "러시아의 전략적 교착 상태가 심화하고 있어 크렘린궁의 우유부단함은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군사적 이득을 얻는 동시에 연료 고급과 기반시설을 체계적으로 공격해 우크라이나의 피해를 키우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영국 전략컨설팅회사 시빌린의 저스틴 크럼프 대표는 "러시아의 마지막 희망은 여름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서방의 흥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며 "그들은 서방 관중이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때처럼 곧 관심을 잃는 것을 계산하고 있다. 시간이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의 지원 지속 여부와 강도 역시 이번 전쟁 결말과 관련된 중요한 변수다. 키이우에서 스페인 엘콘피덴시알 인터뷰에 응한 현지 시민 미카일로는 "이 전쟁은 조 바이든(미국 대통령)이 원할 때 끝난다. 우리에게 무기를 계속 주면 우리가 이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정체된다. 바이든 손에 달렸다"고 말했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최근 내부 대화록에 나온 미국의 전략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최대한 많은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도록 전장 우위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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