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586'과 '청년'을 넘어야 [세상읽기]
[세상읽기][6.1 지방선거]
[세상읽기]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오늘은 지방선거일이다. 이번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이 무려 20.6%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사전투표가 증가하는 최근 추이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이 정치에 열심히 관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 투표율이 다소 하락하긴 했지만,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높아져온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 열기는 지금도 식지 않은 것 같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여러 상반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이번 선거로 만들어질 지방권력의 지형도만이 아니라, 정세와 민심의 큰 흐름이라는 점이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으로 이어진 국면은 그야말로 보수의 주류화 과정이었다. 지난 대선은 그 정도 보수의 압승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대선 이후 민주당의 혼란과 정의당의 무기력은 상황을 급격하게 악화시키는 듯하다.
대선 이후 두어달 동안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박지현의 등장’이 떠오른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단지 여성‧청년이라는 이유로 발탁된 개인이 아니라 우리 정치와 유권자 지형의 큰 변화를 상징한다. 지난 대선에서 득표율 차이를 0.73%로 좁힌 극적인 과정의 중심에 그가 있다. 민주당에 확신이 없던 많은 청년을 불러들인 ‘바람’ 맨 앞에 그가 있었다. 그런데 대선 이후 그는 격한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다.
박지현 위원장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그를 비난한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민주당 내 갈등에 담긴 구조적 함의다. 박 위원장은 대선 국면에서 정치개혁이라는 보편적 과제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대선 뒤 그는 당내에서 ‘청년’이라는 세대적 관할구역 안에 머무르고 그 이상은 나가지 말 것을 요구받았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박 위원장 자신도 ‘청년’ ‘젊음’ ‘세대교체’에 호소하는 작은 정치로 민주당이라는 국민정당의 틀을 바꾸겠다는 큰 야심을 실현하려 한다는 점이다.
박 위원장이 제시한 ‘5대 개혁안’은 ‘더 젊은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맨 앞에 놓았다. 그리고 개혁안에서 ‘약속을 지키는 당’, ‘대중정당’ 같은 추상적 이야기들을 논외로 한다면, 민주당의 핵심 과제로 기후위기 대응, 사회불평등 해소, 연금개혁과 같은 ‘다음 세대를 위한 과제’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것이 왜 ‘다음 세대’를 위한 과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기후위기는 지금 당장의 긴급한 현실이고, 불평등과 복지는 모든 세대의 계급적 문제인데 말이다. 이런 문제들을 세대적 프레임에 가두는 순간 당사자들의 울림은 사라진다.
개혁안 제시 뒤 박 위원장은 ‘586 용퇴론’이라는 폭탄을 투척했다 곧 회수했는데, 이 과정은 단순히 젊은 개혁파 정치인과 ‘586 기득권 꼰대’ 간의 충돌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 ‘586 용퇴론’이라는 선택은 올바른 문제 정의도, 영리한 정치전략도 아니었다. ‘586’이 겨냥하는 비난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누군지 알 수 없으므로 아무도 책임질 수 없었다. 50대 정치인 중 누가 물러나란 뜻인가? 민주당 주류 정치인들과 ‘온정공동체’를 이루는 그 많은 70~80년대생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는가? 전선이 그려지지 않는다.
‘586 용퇴론’ 이후 박 위원장을 공격한 당내 구조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586’ 정치인들 중에는 통 큰 이미지를 연출하려 나름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 반면, ‘개딸’이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 지지층이 박 위원장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 장면은 지금 민주당의 핵심 문제가 단순히 ‘586’이 아니라 권력중심부와 강성지지층 간의 수직적 동맹 구조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 구조의 저층이 여러 세대에 걸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이 다시금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중정당으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개혁의 주체들이 청년의 방에 갇혀선 안 된다. 한편으로 당의 강성·중산층 유권자들이 중시하는 정치개혁 이슈와, 다른 한편 민주당을 찍는 또 다른 많은 유권자의 관심사인 계급·젠더 이슈를 포괄하고 조율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런 리더십을 발휘할 새로운 ‘세력’이 생겨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정의당의 과제일 수 있고, 진보 사회운동단체들의 과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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