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관객 수와 투표자 수
며칠 전 6·1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거인 수 4430만3449-투표자 수 913만3522. ‘저건 그래도 꽤 정직한 숫자이겠구나’. 현대사회는 겉으로 보기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에 섬뜩하다. 관람객, 조회 수 등 우리를 둘러싼 숫자 중 진실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우리가 허수의 세계에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4월 28일, 올해 우리 기업의 첫 번째 배급작인 ‘평평남녀’가 개봉했다. 지금 ‘평평남녀’를 포털에서 검색하면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연결돼 관객 수가 1288명이라고 표시돼 있다. 아직 독립예술극장에서 6주 차 상영을 이어가고 있으니 스코어(관객 수)는 아마 조금 더 오르겠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1500명을 넘기지 못하고 상영을 종료하게 될 것이다. 너무 적은가? 한국독립영화치고 나름 선방한 것 같은가? 최근 개봉한 극영화들이 대체로 3000명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분명 아쉬운 결과이다. 그러나 단순히 많고 적고를 떠나, 이 관객 수를 보고 있노라면 여러 의미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1만 명 관람, 100만 명 돌파. 관객 수는 무엇일까. 실제로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의 합계일까? 이 숫자의 의미를 산업적으로 들여다보려면, 극장에서 진행하는 ‘1+1 티켓 프로모션’, 상영 전 무료시사회, 예매권 이벤트 등 각종 영화 프로모션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극장의 1+1 티켓 프로모션은 관객에게 이벤트로 증정되는 티켓을 배급사나 제작사에서 미리 사는 방식이다. 배급사에서 극장에 1200만 원을 결제하면 최소 1500명이라는 관객 수를 확보해준다. 이런 프로모션은 직접적으로 관객 수를 높이는 효과도 있지만 좌석점유율을 올리는데도 의의가 있다. 개봉 전 진행하는 무료 관객시사회와 예매권을 나눠주는 이벤트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수익 측면에서도 현명한 선택이 된다. 프로모션 비용으로 지출한 1200만 원은 티켓 구매비용이므로, 그 절반의 금액이 다시 배급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극장 티켓 수익금은 대체로 극장과 배급사가 5:5의 비율로 나눠 갖는다)
이런 프로모션이 영화 홍보마케팅 중에 하나였던 때도 있었겠지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다양한 홍보마케팅 기획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관객과 영화를 이어주기 위해 시도했던 다양한 배급활동이 가능했다면, 코로나 시기에는 다양한 오프라인 기획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예를 들어 3000명의 관객을 확보한 영화의 ‘실제 관객’은 얼마일까. 이는 티켓 프로모션 진행 여부, 시사회 규모 등을 파악해야 알 수 있으므로, 내돈내산 관객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내부 관계자만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티켓 프로모션 홍보 방식이 옳다 그르다를 굳이 따지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생각과는 별개로 우리가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예산이 있거나 영화에 적절하다는 판단이 들면 진행하고 있다. 그보다는 이렇게 만연해진 홍보 행태가 우리에게 야기하는 효과가 (어떤 의미론 낮은 스코어보다도) 더 참담하다. 배급 결과를 놓고 평가할 때면 언제나 모두가 숫자 앞에 죄인이 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티켓 프로모션만 하는 게 더 나은 숫자네요”하고 읊조리게 된다. 그게 허수와 실수가 뒤섞인 것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기록된 ‘관객 수’만이 사람들이 인지하는 유일한 증거로 남기에 말이다. ‘평평남녀’ 평가결산회의 때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질 것 같다. 그럴 때면 이 영화를 어떻게 홍보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애를 썼던 사람의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참 싫다.
이 문제는 산업 관계자로서 내게도 난제이지만, 더불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내게도 문제가 된다. 어쩌면 투표의 의미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대선처럼 0.73%P 차이로 승패가 갈린다거나 1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선거가 있기에 투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거짓된 세계 속에서 사수할 수 있는 유효한 숫자가 몇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투표자로서 투표자 수에 기여하는 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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