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칼럼] 부산항이 이룩할 '대륙의 해양화'
제국주의 태동 전후로 인류 역사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투쟁으로 보는 관점이 있었다. 미국 해군장교이며 군사전략가인 알프레드 마한의 ‘역사에 미친 해양권력의 영향’이 해양대국론, 영국의 지리학자 할포드 맥킨더의 ‘역사의 지리적 회전축’이 대륙우세론을 대표한다. 어떤 시각에서라도 반도는 위험에 노출됐다. 말레이반도 이베리아반도 한반도 모두 반도의 중간부에서 분단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이 됐다.
이런 정치·군사적 관점과는 달리 250여 년 전 애덤 스미스는 경제적 관점에서 해양무역이 대륙무역보다 더 싸기 때문에 긴 해안선과 항해 가능한 강이 많은 해양국가가 국부 축적에 유리하다는 통찰을 제시했다. 이를 국제물류 관점에서 보면 인류 역사는 대륙을 넘어 해상을 통한 교역 확대, 교역수단의 다양화 효율화를 통한 부의 창출을 위한 경쟁이었다. 국제물류는 국제 분업체제·공급망에 힘입어 세계화를 촉진했는데, 세계화는 부산항 싱가포르항 상하이항 LA항 로테르담항 등 대륙별 중심 항만에 의존한 바 크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해양대국론에 ‘엄지척’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단기간에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과 어깨를 견주는 나라로 도약한 것은 ‘해양화(海洋化)’의 효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항을 컨테이너 중심의 동북아 물류 중심기지로 육성한 정책은 단연 돋보이는 혜안이었다. 한국은 부산항이 있었기에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부산항의 위상과 역할을 계속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즉, 부산항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필자는 육해(陸海)를 포용한 국가정책, 천혜의 중심성과 연결성, 하늘이 내려준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꼽고 싶다.
부산항은 대륙세력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뚝심 있게 추진한 해운항만 정책이 낳은 성과물이다. 부산항은 제국 열강의 탐욕과 침탈, 전쟁의 아픔과 갈등, 분단이 가져온 대륙과의 단절 등 처절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해양화의 첨병이 됐다. 부산항이 365일 24시간 국내기업과 세계시장을 연결, 국민의 밥과 일과 꿈인 산업화를 이루어낸 것이 한국의 해양화였다.
부산항은 국제물류의 중심성과 연결성이 탁월해 항만 연결성 지수가 세계 3위다. 이 연계의 탁월성은 국가 정책의 승수효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1995년 일본 고베지진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부산항 신항과 배후단지 개발, 북항 노후부두 폐쇄와 기능 재배치는 정책적 혜안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계를 지켜내며 더 많은 사람에게 밥과 일과 꿈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부산항의 국제물류 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정책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다. 부산항은 국가 생존에 직결된 정책이므로 범정부 차원의 국가발전 전략으로 촘촘하게 관리돼야 한다.
어느 나라든 도심항만은 항만기능을 접고 상업공간으로 변모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싱가포르는 항만을 재개발해 마리나베이 샌즈를 만들어 관광객이 넘쳐난다. 부산 바다는 싱가포르 바다보다 아름답고 역동적이다. 새롭게 단장 중인 북항재개발 지역은 반경 3000㎞ 내 관광객이 찾고 싶은 특별함과 매력이 있는 명소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부산이 국제해양관광도시로서 급부상할 수 있다.
부산항의 동북아 물류 중심 정책, 부산항의 중심성과 연결성 확대 강화, 부산 바다의 아름다움과 다양성과 역동성이 부산항의 힘이다. 이것이 동북아의 변방 한국을 동북아 물류 중심기지로 만들었다. 우리 부산항은 언제든지 한반도의 두 번째 해양화 즉, 대륙의 해양화를 만들어 낼 역량을 비축하고 있다. 남북 육로와 북극해항로가 열리는 날, 부산항에서 컨테이너를 적재한 열차와 선박이 그 길을 통해 유럽으로 출발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동북아 물류 중심 부산항은 유럽-동북아시아-미국을 잇는 글로벌 브리지가 될 것이다. 부산항이 만들어낼 두 번째 한국의 해양화는 대륙의 해양화가 될 것이다. 대륙의 해양화가 가져올 우리나라의 새로운 부흥과 번영이 기대된다.
김정원 한국해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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