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미디어아트 거장, 케인스를 불러내다

정상혁 기자 2022. 6.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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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 슈타이얼 아시아 첫 개인전]
/정상혁 기자 최신작 '야성적 충동'의 한 장면. 영국 경제학자 케인즈로 분장한 연기자가 등장한다. 히토는 “내 작품을 전시하기에 한국만큼 적절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성적 충동은 통제를 벗어날 때 생기죠. 내 온갖 탐욕과….”

영상 시작과 동시에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1883~1946)가 등장한다. 사실은 케인스로 분장한 연기자다. 그는 ‘크립토 콜로세움’이라는 살벌한 메타버스 투견장의 사회자다. 이곳에서 동물들은 서로 죽을 때까지 싸움을 벌이고, 한 마리가 죽을 때마다 NFT(대체불가능토큰)로 발행된다. 혼돈 그 자체다. 화면과 사운드가 격화되면서 케인스 역시 광기에 차올라 소리친다. “야성적 충동은 내가 미쳐 돌아갈 때 생깁니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를 통제합시다.”

독일 출신 세계적 미디어아트 작가 히토 슈타이얼(56)이 그의 첫 아시아 개인전(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24분짜리 최신작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은 가상 화폐와 NFT라는 첨단의 논쟁을 주제로 삼는다. 제목은 케인스가 1936년 언급한 경제 용어를 차용한 것으로, 난국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비이성적 결정을 의미한다. 지난 4월 방한한 히토는 “합리적 행동에 대한 기대가 꺾이는 지점을 최근 가상 화폐 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곤 작품 뒤편에 실제 식물이 자라는 유리병을 설치해뒀다. 가상이 야기한 파국 대신 “뭔가를 다시 살려내는 생성의 작업”이다.

지난 4월 방한 당시 히토 슈타이얼. /국립현대미술관

단연 미디어아트 분야의 수퍼스타다. 2017년 미술 매체 ‘아트리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되기도 한 작가는, 심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고찰해야 할 주요 화두를 던져왔다. 시각으로 점철된 감시 사회를 고발(2013년작 ‘안 보여주기’)하거나, 현실의 문제와 연동된 장소로서 동시대 미술관(2015년작 ‘면세미술’)을 제안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가상 화폐에 대한 주목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히토는 “NFT는 소수의 작가만 이익을 취하는 전통적인 미술 시장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여러 혁신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반복돼 듣기가 지겹다”고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NFT는 지난해 ‘아트리뷰’ 선정 영향력 1위였다.

대표작 23점이 소개되지만, 게임 및 유튜브 중계 등의 형식을 마구 섞어 이해가 쉽지는 않다. 히토는 그러나 “시각 예술 본연의 힘은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또한 한눈에 파악할 수 없기에 이를 위해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9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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