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거리두기] 중국의 무엇이 두려운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남겨놓은 숙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중국’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워 통합과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과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국의 동참을 바라는 미국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출범 멤버로 참여하기로 확정함으로써 한·미동맹은 단순한 안보동맹을 넘어 경제, 기술 등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전통적 도식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분명 윤석열 정부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문제가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너무나 복합적이어서 전문가들에게도 전망은커녕 분석조차 간단치 않다. 나의 관심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이다.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중국 정부의 경고가 심리적으로 먹혀든 것일까? 사람들은 중국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려움은 우리의 판단을 왜곡한다. 어떤 사람은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정치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은 중국이 우리를 마음대로 협박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판단이 이념적 성향에 따라 갈라지기도 하지만, 양쪽 모두에 깔려 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한국의 최대 무역대상국은 중국이다. 2021년 한국의 중국 수출 비중은 약 25%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것처럼 특정 국가에 대한 지나친 무역의존도는 안보의 문제가 된다.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가스의 비중이 55%에 이르는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극적 군사 지원을 머뭇거리는 것도 과도한 의존 때문이다. 독일은 생산된 자동차의 37.4%를 중국에서 판매했다. 세계화의 최대 혜택을 본 국가가 중국이라면, 중국 경제의 호황으로 가장 큰 이익을 챙긴 나라가 독일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경제는 안보 문제가 되고, 우리는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중국의 협박에 노출된다.
경제·디지털 감시 대국의 두 얼굴
그런데 문제는 경제만이 아니다. 내가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중국의 다른 모습이다. 이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 과도한 중국 의존도다.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재교육 시설이 사실은 도망자를 사살까지 하는 전체주의적 강제수용소라는 증거자료가 최근 공개됐다. ‘신장공안파일’(Xinjiang Police Files)로 이름 붙여진 이 자료는 중국 공안당국이 2018년 1~7월 사이에 만든 문서와 사진 그리고 영상을 해킹한 것으로서 영국 BBC를 비롯한 14개 언론사가 검증을 거쳐 공동으로 보도되었다. 이 자료를 보면 소수 민족에 대한 억압을 넘어 인종 청소에 가까운 범죄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중국의 경제적 보복이 두려워 감히 신장 위구르족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못한다. 불간섭의 정치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중국이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직접 훼손하지 않는 한 우리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냉소적 방관주의가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현실주의로 둔갑한다. 그러나 ‘신장공안파일’을 통해 드러난 디지털 감시사회는 우리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현대의 첨단 과학과 기술이, 특히 인공지능을 갖춘 정보기술이 전체주의적 정권과 결합할 때 어떤 사회가 펼쳐질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총체적으로 해킹당하는 전체주의적 감시사회다.
중국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속성 때문이다. 중국은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가공할 만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디지털 감시기술은 엄청난 정보를 확보하고, 정보는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고, 인공지능은 다시 디지털 감시에 활용되는 순환이 이루어진다. 데이터 자체는 잘 알려진 것처럼 쓸모없는 정크 정보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러한 목표를 기반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데이터를 평가할 때만 데이터는 의미 있는 정보가 된다. 감시로 얻은 정보는 이렇게 감시용 데이터가 된다.
감시를 위한 정보에는 대체로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행동을 기록하기 위한 감시이고, 다른 하나는 행동을 예측하기 위한 감시다. 중국은 다양한 데이터를 결합하여 잠재적 위협을 식별하는 ‘행동 예측 감시체제’를 구축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코로나19 추적관리 시스템에서 본 것처럼 누가 언제 어디에 머물렀다는 단순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행동 기록 감시’다. 반면 어떤 감염자가 자가격리를 하지 않고 친구와 만날 개연성을 미리 계산하는 것은 ‘행동 예측 감시’다. 행동 기록은 과거와 관련이 있다면, 행동 예측은 미래와 연관이 있다. 누가 분리주의 테러리스트이고, 누가 사회질서를 파괴할 성향이 있는 잠재적 범죄자에 관심이 많은 국가는 의심의 여지 없이 ‘행동 예측 감시’에 훨씬 관심이 많다.
단순한 기록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예측에는 항상 결과가 있어야 한다.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감시 장치는 언제나 놀라운 성과를 보인다. 디지털 감시기술과 장치에 ‘사회질서와 안전의 유지’라는 목표를 부과하면, 감시 데이터를 평가 처리하는 알고리즘은 어떤 사람과 집단이 질서와 안전에 위협이 될 확률을 어떤 식으로든 계산해 낸다. 어떤 사람이 교통 법규를 위반한 횟수, 소셜미디어에 올린 특정 단어의 빈도수, 평상시 섭취하는 알코올양 및 만나는 사람들의 정보를 상호 연계하여 평가하면,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해로운 말썽꾼이 될 확률이 계산된다. 모니터링된 각각의 행동 기록은 그 자체로는 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데이터들이 서로 연계되고 융합되면 전혀 다른 결과를 산출한다. 감시 대상자는 평가 항목에 따라 점수를 받고, 연계된 점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국가와 해당 기관이 개입한다. 신장에서는 최소 1만명이 그들의 행동 데이터의 알고리즘적 상관관계에만 근거하여 투옥되었다고 한다.
과도한 의존의 두려움 성찰할 때
중국은 최고의 감시기술을 갖고 있으며 최대의 행동 기록 보유국이다. 중국에서는 누구든,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감시당한다. 세계의 감시카메라 절반이 중국에 설치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수집된 사람들의 생체정보도 다른 정보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감시 정보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코로나19 전염병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자, 중국은 안면인식 기술을 대체할 새로운 행동 감시기술을 발전시켰다. 신체 부위의 움직임을 서로 분석하여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보행 인식기술은 지문 인식만큼 정확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몇십m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홍채를 인식할 수 있는 기술도 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중국은 이렇게 발전시킨 감시기술을 세계 80여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어떤 국가들이 이런 첨단 감시기술을 왜 수입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한 얼굴은 경제 대국이지만, 다른 얼굴은 총체적 디지털 감시사회다. 중국 국민이 자신들의 경제적 부와 행복이 보장되는 한 이런 사실에 신경 쓰지 않는지는 모를 일이다. 정치적 자유보다 경제적 안정을 선택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고귀하게 생각하는 우리에겐 다른 문제다. 경제적 안정 때문에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감시체제의 모델로 묘사되는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감시의 이중적 효과를 잘 말해준다. 원형 감옥의 건축학적 구조는 중앙부의 감시탑에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보지만, 죄수들은 완전히 보이지만 결코 감시자를 볼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진다. 죄수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결국은 감시와 규율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 완전한 감시체제에서는 죄수가 현실적으로 감시될 필요가 없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당연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중국은 우리를 협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의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이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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