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봉쇄 두달… 日, 중국산 부품 없어서 에어컨 대란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2. 6.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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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점 곳곳 “신규주문 중단” “최단 배송일 7월29일”… 가전 품귀 현상

“세탁기 하나 사는데 두세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요?”(손님)

“답답하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상하이의 록다운(폐쇄)이 언제 풀리나, 맨날 뉴스만 쳐다보고 있습니다.”(판매 직원)

31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한 가전제품 판매점에‘반도체 부족으로 가전제품 생산 감소, 서둘러주세요’라고 적힌 안내문이 걸려 있다. 코로나 여파로 중국산 전자 부품 공급이 급감해 가전 업체들이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일본 곳곳에서 물량 부족 사태가 나타나고 있다. /최은경 특파원

31일 오전 도쿄의 대형 가전 판매점 ‘빅카메라’ 아카사카점 세탁기 코너. 한 여성 고객이 최소한 2개월 이상 기다려야 원하는 세탁기를 배달받을 수 있다는 말에 실망한 표정을 짓자 판매 직원은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매장의 파나소닉·샤프·히타치와 같은 일제 가전 브랜드 진열대 곳곳에는 ‘최단 배송일 7월 29일’ ‘신규 주문 중단’과 같은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세탁기 매장 쪽에는 ‘생산 감소, 일부 품목은 보유 물량이 적습니다. 구매를 서둘러 주세요’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매장 직원은 “드럼세탁기는 지금 주문해도 배달은 오는 7~8월에야 받을 수 있다”며 “딱 언제 배달한다고 시점을 약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풍요로운 국가로 꼽히는 일본이 에어컨·세탁기·냉장고·전자레인지·밥솥과 같은 전자 제품 부족으로 시름하고 있다. 중국이 상하이에 전면 록다운을 실시한 뒤 중국산(産) 부품 공급이 급감하면서 일본 가전 공장들이 정상 가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달 주요 첨단 물자의 자국 내 확보와 해외 유출을 막는 ‘경제안전보장추진법(경제안보법)’을 도입, 사실상 중국에 타격을 가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정작 중국산 부품이 부족해 일본이 심각한 충격을 받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촘촘하게 연결되고 상호 영향을 주는 글로벌 공급망(서플라이체인)의 복잡한 단면이 일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중국발 부품 부족 사태 직격탄 맞은 일본 가전업계

당장 본격적인 여름 더위를 앞두고 ‘에어컨 위기가 임박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주요 제조사들이 에어컨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데다 수리 부품도 모자라, 자칫 8월 불볕더위 때 급하게 에어컨을 구매하거나 수리하려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가전업체 샤프는 공식 트위터에 “지금 당장 에어컨을 시운전해 달라. 한여름에 수리하려면 엄청나게 기다려야 한다. 급하게 구입하는 것도 (대기가 길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

도쿄는 여름에 최고 온도가 33~34도만 돼도, 높은 습도 탓에 체감온도는 38~39도에 달한다. 매년 4만~9만명이 열사병으로 구급차를 타고 100명 안팎이 사망한다. 대부분 고령층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선 일부 에어컨 제품의 경우 ‘9월 초 출하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올라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탁기의 경우 신규 주문 자체를 중단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히타치는 지난 4월 통돌이세탁기 8종의 신규 주문을 당분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단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재개 시점은 불분명하다. 파나소닉은 현재 드럼형 세탁기 7종 가운데 고가 상품군 2종만 주문을 받고 나머지 5종은 팔지 않는다. 중국산 부품이 턱없이 부족해지면서 30만엔(약 300만원)대 고가 제품만 만들고, 나머지는 포기한 것이다.

판매 중단 고지는 전자레인지나 밥솥 코너에서도 보였다. 미쓰비시전기는 당초 지난달 21일 예정했던 밥솥 신제품 발표를 무기한 연기했다. ‘신제품 출시를 위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한 제조사의 전자레인지 코너 옆에는 ‘우리와 관계 있는 중국 부품 제조사가 록다운으로 공장 가동을 중지했고 우리도 전자레인지를 만들 수 없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온라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빅카메라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드럼세탁기 41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5종은 “재고가 없다”는 설명이 나왔다. ‘물량 입하 시 순차적으로 발송’이라고 했다. 냉장고도 30% 정도가 재고가 없는 상태였다.

아사히신문은 “안전보장법은 주요 물자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고 중국 의존에서 탈피하자는 조치였는데 정작 정부 관계자들도 ‘지금은 중국을 빼놓고는 일본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중국과 경제 측면에서 디커플링(탈동조화)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예상보다 더 큰 일본 산업의 중국 의존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한국에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한 지 2년 정도 지났지만 오히려 한국은 주요 소재 100품목의 일본 의존도를 2019년 30.9%에서 24.9%로 낮췄다”며 한국에 경제 제재를 취한 자민당 정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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