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칼럼] 언제나 거품은 고통으로 끝난다
거품과 고통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국가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시중에 풀리면 자산가격의 거품을 불러온다. 자산가격 급등이라는 마약에 취한 투자자들은 자신이 불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거품이 터진 후에야 현실을 자각한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고 그들은 감내하기 힘든 빚과 마주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반복돼 온 일이다.
1985년 일본이 미국을 넘어 세계 최고 국가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올 때다. 심각한 무역적자를 겪던 미국은 일본, 독일 등 무역흑자국을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이 이뤄졌다. 평가절상은 일본 수출경쟁력의 저하를 의미한다. 일본은 경기부진을 우려해 금리를 인하했다. 오히려 독이 됐다. 저금리로 풀린 자금은 자산시장으로 몰렸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다. 일본 도쿄 부동산을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은행은 경쟁적으로 대출을 늘렸다. 급기야 부동산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주었다. “어차피 부동산이 상승할 테니 문제될 것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산가격 폭등에 심각성을 느낀 금융당국은 금리 인상과 함께 부동산 대출규제에 나섰다. 1989년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거품경제 시대’는 종말을 알렸다. 주식과 부동산이 폭락했다. 전국 규모의 은행 13곳 가운데 10곳이 도산했고 일본 가계의 빈곤화를 불렀다. 이후 일본 경제는 30여년의 긴 경기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다. 2000년대 초 닷컴버블과 9·11 사태 등으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당국은 저금리 정책으로 경기부양에 나섰다. 부동산 수요를 촉발시켰고 돈을 빌리겠다는 사람들이 몰렸다. 이때 금융전문가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주택을 담보로 가계에 돈을 빌려줘 이자수익을 얻는 것에 더해 돈을 빌려주면서 확보한 부동산담보채권을 모아 만든 금융상품(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해 추가로 돈 버는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당초 대출은 신용도가 높은 우량등급(프라임)이 대상이었다. 돈을 갚을지 의심되는 저신용자(서브프라임)에게도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무슨 자신감이 있었냐고? 일본에서와 똑같다. 부동산은 오른다는 믿음에서다. 죽은 사람뿐 아니라 강아지 이름으로도 대출이 나갔다.
그러나 2004년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대출금리가 오르자 저신용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된다. 금융기관이나 채무자나 “집값이 오를 것이므로 집을 팔아 대출을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값이 급락하자 이런 계획은 망상이었음이 드러났다. 돈을 빌린 가계와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모두 벼랑에 몰렸다. 파산의 도미노가 발생했다. 세계적인 금융기관 리먼브러더스가 2008년 파산했다. 리먼 사태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침체를 가져왔다.
일본과 미국 모두 유사한 과정을 거쳐 거품이 꺼졌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을 시작한 뒤 대출이 늘고 이는 자산가격 급등을 초래한다. 거품은 커지다가 결국엔 붕괴하고 가계·금융기관의 파산으로 끝난다. 부동산 거품을 키운 연료는 ‘부동산 우상향’의 믿음이었다.
다시 10여년이 흘렀다. 달라진 게 있을까? 금융위기로 경제가 침체에 빠진 이후 세계는 다시 돈풀기에 나섰다. 이번엔 ‘양적완화’라는 신무기를 들고나왔다. 초저금리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내놓은 극약처방이다. 여기에 코로나19는 기름을 부었다. 2008년 8000억달러에 불과하던 미국의 본원통화는 2021년 8조2000억달러로 늘어났다. 막대하게 풀린 돈은 거품으로 이어졌다.
한국이 예외일 수 없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저금리에 돈은 부동산시장으로 몰렸다. ‘부동산 불패’는 신앙이 되었다. 문제는 부채다. 지난해 말 가계신용 잔액은 1862조1000억원이다. 세계 주요국 가운데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3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연 4.05%다. 8년1개월 만에 최고다. 연말에는 연 8%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끌’ ‘빚투’에 많은 이들이 올라탔다.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희망회로를 돌리는 일은 부질없다. 핵주먹으로 불리던 전설적인 권투선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모두 계획이 있다고 말한다. 처맞기 전까지는….”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박종성 논설위원 p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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