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73] '털사 인종 학살'
100년 전 미국의 외교정책을 고립주의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때 미국은 영국과 일본의 해군력 팽창을 중단시키는 합의(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를 이끌어 냈고, 독일에 받아낼 제1차 세계대전의 배상금을 대폭 삭감(1924년 도스 플랜)토록 프랑스와 영국을 설득했다. 니카라과와 파나마 등 라틴아메리카 투자는 두 배 이상 늘렸다. 그러니 1920년대 미국이 고립을 추구했다는 것은 오해다.
이렇게 나라 밖에서 분주했던 미국이 나라 안에서는 무기력했다. 백인우월주의를 앞세운 비밀단체(KKK)가 공공연히 흑인들을 향해 테러를 저지르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오클라호마주가 인종 갈등의 중심이었다. 그곳은, 노예제도가 없었던 북쪽 캔자스주에서 흑인들이 일찍부터 내려와 정착한 덕에 흑인의 경제력이 상당히 좋았다. 백인에게 뒤지지 않았다.
1921년 오클라호마의 털사라는 도시에서 사달이 났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백인 소녀가 흑인 소년을 골탕 먹이려고 비명을 질렀다. 경찰은 다짜고짜 소년을 유치장으로 끌고 갔다. 백인 소유의 지역신문은 사정도 모른 채 “엉덩이에 뿔 난 검둥이들은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는 선동적인 사설을 뿌렸다. 그날 저녁 빈곤층 백인들이 “블랙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던 흑인 부자촌을 습격했다. ‘털사 인종 학살’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300명 이상이 죽었다. 겁에 질린 흑인들이 목숨과 재산을 지키려고 총을 들자 백인 경찰들은 그들만 두들겨 팼다. 구금된 흑인들이 6000명이 넘었고, 방화와 약탈은 통제되지 않았다. 이후 오클라호마의 흑인들은 테러가 무서워서 돈이 있어도 집을 사지 않았다. 그 트라우마는 20년 넘게 계속되었다. 한때 “세계 원유의 수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석유 생산이 많았던 오클라호마의 경제는 서서히 후퇴했다. 사회 통합 실패가 가져온 결과다. 101년 전 오늘 털사의 주택가에서 불길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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