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선택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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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음식점의 메뉴가 많아서 정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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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다. 음식점의 메뉴가 많아서 정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선택지가 많을 때 오히려 결정하기 어려운 것을 두고 심리학자들은 정보의 ‘과부하(Overload)’라고 설명한다.
이미 1970년 앨빈 토플러도 과도한 선택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앞으로 맞이할 미래는 변화의 방향보다는 변화의 속도가 중요하다면서 그 딜레마가 ‘선택의 과잉(overchoice)’이라고 했다. 2004년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도 선택사항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선택을 못하는 선택의 역설, 선택의 피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는 선택의 문제가 질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디지털 영역은 모든 것이 ‘예’ 혹은 ‘아니오’라는 기호적 언어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이 양산하는 정보의 과잉은 관심의 빈곤을 불러온다. 넘치는 정보로 인해 관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선택이 어렵거나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답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대선에 이어 80일 만에 다시 한번 선택의 순간을 맞았다. 치열한 대선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지방선거전이 펼쳐졌으니, 선택을 해야 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과잉, 과부하를 느낄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주권자로서 의무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니, 피곤한 일만은 아닐 듯싶다.
새삼 선택의 순간을 맞으면서 우리는 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혹시 편견이나 확증편향에 의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선택 과잉 시대, 우리가 믿고 있는 최선의 선택이 ‘선택의 역설’은 아닌지 투표장을 찾기 전에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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