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모래주머니' 제대로 풀려면..

이천종 2022. 6. 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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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규제개혁 흐지부지
이익단체·각 부처 책임소재 얽혀
새 정부도 덩어리 규제 해결 목청
대통령 의지·대중의 지지 관건

“우리 기업들이 모래주머니 달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뛰기 어렵다.”(5월30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

“기업이 해외에 도전하는 것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선수나 다름없다. 운동복도 신발도 좋은 것을 신겨 보내야 하는데,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을 따오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3월21일 경제6단체장 오찬 간담회)
이천종 경제부장
윤석열 대통령이 요즘 즐겨 쓰는 단어가 ‘모래주머니’다. 정부가 기업 경영활동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낡은 규제)를 풀어주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진단과 처방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초대형 복합 위기로 불리는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는 한국 경제 돌파구로서 규제개혁만 한 게 없다. 수출주도 국가인 한국이 대외 악조건을 뚫고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민간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개혁이 필수조건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돌아보면 정권 초반이나 경제위기가 왔을 때 역대 대통령들도 하나같이 규제개혁 카드를 빼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자신의 규제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전봇대 뽑기’에 비유하며 규제개혁 전도사를 자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1년 후 경제위기가 스멀거리자 ‘손톱 밑 가시’를 뽑자며 각종 규제에 메스를 들이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9세기 시대착오적인 규제로 악명높은 ‘붉은 깃발법’을 거론하며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규제개혁기본법’을 최초로 만들었다. 규제개혁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정권의 요술램프였던 셈이다.

정권마다 그렇게 요란했건만 안타깝게도 딱 떠오르는 규제혁신 성공 모델은 드물다. 한국 정부의 규제개혁에 대한 평가도 박하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정부의 민간에 대한 규제 정도를 지수화한 한국의 규제환경지수는 올해 68.2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꼴찌(35위) 수준이다.

기세등등하고 서슬 퍼렇던 규제개혁 드라이브는 왜 번번이 흐지부지됐을까.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의 디테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칼을 빼든 이들이 멀리서 볼 때는 대부분의 규제가 쉽게 청산될 적폐처럼 보인다. 산더미처럼 쌓인 규정집은 공무원들의 밥그릇처럼 비칠 뿐이다. 하지만 칼질을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명분과 사연 없는 규제는 하나도 없다. 규제는 이익에 매몰된 기업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도 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등은 보다 엄격한 정부 규제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폭락한 가상자산 테라 사태는 규제 부재가 부른 참사다. 이러다 보니 사고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규제기관 공무원들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게 몸에 배있다. 규제를 둘러싼 이익단체나 정부 부처의 이해와 책임 소재가 이렇게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규제 하나를 없앴다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이 슬그머니 새로운 규제가 생기는 일이 반복되는 까닭이다.

게다가 우리의 규제방식은 허용된 것들만 가능하게 하고, 나머지는 다 하지 못하도록 하는 ‘포지티브 규제’다. 될성부른 기업들이 새로운 혁신을 선보여도 포지티브 규제 아래서는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법률이나 정책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면 대부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규제개혁, 절대 쉽지 않은 길이다.

결국 규제개혁의 성패는 선출된 지도자의 변함없는 의지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가 관건이다.

거대한 규제수혜 집단과 공무원의 보신주의를 돌파할 무기는 대통령의 의지와 이를 지지하는 민심뿐이다.

일단 윤 대통령과 새 정부의 의지와 방향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4일 18개 부처별로 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취임 후 첫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 “덩어리 규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다짐했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 모든 일에 ‘갓(god)’이 돼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없다. ‘굿(good)’을 받을 수 있는 일 한두 가지에 집중하면 된다. 규제개혁이 시작이다.

이천종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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