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경의행복줍기] 내가 나로 사는 시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 선배가 위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에 평소 가깝게 지내는 선후배들이 충격에 휩싸여 달려갔다.
과수원집 막내딸인 이 선배는 웃음이 많았고 종달새처럼 재잘재잘 다양한 이야기를 어찌나 맛깔스럽고 재미있게 풀어놓는지 늘 주변 사람을 즐겁게 했다.
이 선배의 남편은 아내의 낭만과 이야기를 천박하고 쓰잘머리 없는 시간 소모라고 외면했다.
'나 어디 있지?' 병든 이 선배는 '내가 나로 사는 시간'을 선포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과수원집 막내딸인 이 선배는 웃음이 많았고 종달새처럼 재잘재잘 다양한 이야기를 어찌나 맛깔스럽고 재미있게 풀어놓는지 늘 주변 사람을 즐겁게 했다. 거기에다 이 선배는 매우 낭만적이었다. 언제나 깔끔한 흰 빛 린넨 식탁보와 작은 꽃병과 장미 한 송이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여행 중 만난 바닷가 낡은 철제 테이블에 린넨 식탁보를 덮고 장미 한 송이 꽂힌 꽃병을 놓고 커피를 마시면 비릿한 어촌 바닷가가 아름다운 지중해로 변했다. 벽지가 찢어진 허름한 식당도 이 선배 식 치장을 하면 품격 있는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낭만이 생활의 고단함을 벗겨낸다는 걸 이 선배를 통해서 배웠다.
그런데 이 선배는 결혼과 동시에 달라졌다. 이 선배의 남편은 아내의 낭만과 이야기를 천박하고 쓰잘머리 없는 시간 소모라고 외면했다. 이 선배의 남편은 모든 걸 돈이 되는 일과 안 되는 일로 구분했다. 어느 날 이 선배는 모처럼 큰맘 먹고 산 갈치가 상한 듯해서 바로 시장 생선가게로 달려갔다. 주인은 생선냄새라고, 이 선배는 상한 냄새라고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싸웠다. 그러다 갑자기 목이 콱 막혔다. 갈치 한 마리 때문에 상대방 머리카락이라도 잡을 기세로 거칠게 싸우고 있는 자신. 돌아오는 길목에서 이 선배는 무릎을 꺾고 울었다. ‘나 어디 있지?’ 병든 이 선배는 ‘내가 나로 사는 시간’을 선포했다. 우리는 눈물을 참으며 박수로 격려했다.
과연 내가 나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른 잘 모시는 종갓집 맏며느리, 아이들 성적에 집중하는 극성스러운 엄마, 입사동기 중에 항상 먼저 승진하는 일 잘하는 업무부 김 과장,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늘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달리는 아버지, 태어나면서부터 효자여야만 하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 내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갖게 되면 내가 나로 살 수 없다. 잠시 남의 옷을 빌려 입어도 불편하고 어색한데, 내가 나로 살 수 없다는 건 지독하게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면 천체망원경을 한 대 사서 하늘의 별을 실컷 보는 일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면 시집 몇 권 사는 일부터,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잃어서 안타깝다면 매달 아주 로맨틱한 영화 한 편을 보면서 황량한 마음 밭에 작은 꽃씨를 뿌려 주는 일부터. 순간순간이라도 ‘내가 나로 사는 법’을 찾는다면 그만큼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조연경 드라마작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덕수 탄핵 때 ‘씨익’ 웃은 이재명…“소름 끼쳐, 해명하라” 與 반발
- "경찰차 막아라!" “대통령 지켜라”… 영장 발부 후 아수라장 된 尹 관저 앞 [밀착취재]
- 선우은숙 “녹취 듣고 혼절”…‘처형 추행’ 유영재 징역 5년 구형
- “아내가 술 먹인 뒤 야한 짓…부부관계 힘들다” 알코올중독 남편 폭로
- 이세영, 얼굴·가슴 성형수술로 달라진 분위기 “회사에서 예쁘다고...”
- “남친이 술 취해 자는 내 가슴 찍어…원래는 좋은 사람“ 용서해줘도 될까
- 황정음, 이혼 고통에 수면제 복용 "연예계 생활 20년만 처음, 미치겠더라"
- 은지원, 뼈만 남은 고지용 근황에 충격 "병 걸린 거냐…말라서 걱정"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