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임금체계, 호봉에서 성과중심 전환을

2022. 6. 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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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임금피크제는 연령차별" 제동 걸어
노사정 협력, 임금고용 관행 단계적 개선 시급

일 잘 하는 사람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게 경제의 원리이고 공정과 상식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에 퇴직하는 사람과 일할 기회가 줄어든 젊은 사람이 넘친다. 임금이 근속연수에 따라 올라가(호봉제) 생산성과 괴리되고 인건비 부담이 해가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정년만 연장하면 모순이 커진다. 호봉제의 모순을 줄이고자 도입한 것이 임금피크제인데, 일정 연령이 넘으면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는 임금결정의 원리에 맞지 않아 편법에 지나지 않고, 일을 잘해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장을 떠나게 만들어 소중한 노동력을 쉬게 만든다.

대법원이 최근 모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을 금지하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그렇다고 임금피크제 전체를 법 위반으로 보지는 않았다.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이 정당하고, 임금 삭감의 폭과 기간 및 업무량과 업무강도의 저감이 합리적이며, 절감한 임금 재원이 신규채용 등에 사용되면 괜찮다는 취지의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기준은 노사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추상적이고, 임금 삭감과 업무 저감 등에 대한 평가도 서로 다를 수 있다. 그 결과 우려한 대로 임금피크제의 대상인 현직 및 퇴직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는 분위기다. 정부는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하면 괜찮다고 말하지만 일자리와 소득에 직결된 문제라 혼란이 예상된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전 단국대 교수·경제학
임금피크제는 일본이 고령화 대책으로 정년 연장과 함께 도입한 제도다. 입사하면 정년까지 일하는 평생고용과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경직적 관행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임금피크제라는 용어를 찾기 어렵다. 일본식 임금고용 관행은 실업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 일본은 저임금·저생산성·저성장으로 특징 지어지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고, 경직적인 임금고용 관행으로 혜택을 받는 소수의 근로자와 그렇지 못한 다수의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로 노동시장이 양극화되었으며, 고령층의 빈곤율은 올라갔다. 일본이 뒤늦게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임금고용 관행의 개선에 나섰지만 성과는 작았다. 놀랍게도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

우리나라는 임금고용 관행 개선의 필요성이 더 크다. 1000인 이상 대기업의 70%, 공공부문 100%가 호봉제로 임금을 결정한다. 이러면서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커졌다. 각국의 임금고용통계를 비교해보면, 2020년 기준으로, 근속연수 30년 이상과 1년 미만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한국은 2.95배로 일본 2.27배, 유럽연합(EU) 15개국 평균 1.65배보다 훨씬 크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면 생산성도 제고하기 어렵다.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성과를 거두느냐에 관계없이 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55세 이상 장년 근로자의 임금은 34세 이하보다 3배 많지만, 생산성은 6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낙후된 임금고용 관행이 조기 퇴직과 고령층의 빈곤율을 세계에서 가장 높게 만든 것이다.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은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임금피크제를 활용할 이유도 없어진다. 하지만 임금체계 개선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사정이 임금체계 개선을 위해 협력하고, 단계적으로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인사혁신 차원에서 공공기관의 직군을 세분화하고 새로 채용하는 사람부터 직무성과제 임금을 적용해야 한다. 민간 부문은 정보기술(IT)산업과 전문직의 경우 직무 중심의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을 촉진하도록 근로조건 변경에 대한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사업장 전체가 아닌 해당 부문 근로자로 좁힐 필요가 있다.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경제성장과 고용확대를 지속하고 고령화가 빈곤화로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전 단국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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