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설운도가 강화 '우리마을' 1호 홍보대사 된 사연
지난 5월 24일 오후 강화도 ‘우리마을’엔 귀한 손님이 방문했습니다. 가수 설운도씨였지요. 이날 설씨가 우리마을을 찾은 건 ‘홍보대사’를 맡기 위해서였답니다. 우리마을 홍보대사는 설운도씨가 1호입니다.
강화 우리마을은 발달장애인들의 일터입니다. 2000년 3월 성공회 김성수(92) 주교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을 내놓아 발달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직업재활시설로 문을 열었지요. 이곳에서 발달장애인 50명이 콩나물을 키우고 전자부품 조립, 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연필과 화분 만들기 등 일을 하고 봉급을 받지요. 이들에게 봉급만큼 중요한 것은 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 주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대한성공회의 큰어른입니다. 강화도 유지 집안 장남이었던 김 주교가 성공회 사제로서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맡은 일이 장애인 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 교장이었습니다. 김 주교는 베드로 학교를 통해 발달장애인들이 학교 졸업을 가장 슬퍼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엔 발달장애인들이 졸업 후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외출도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김 주교는 발달장애인들의 슬픔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공회 서울교구장, 한국관구장, 성공회대 총장 등을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우리마을’을 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년 전엔 장애인 시설에 대한 편견이 더 심했지요. 그렇지만 강화에 ‘우리마을’을 개설할 때에는 이장 회의에서 반대 없이 통과됐답니다. 김 주교 집안이 그동안 인근 주민들에게 많이 베풀어 인심을 얻은 덕분이랍니다.
풀무원 등 대기업과 생협들이 콩나물을 주문하면서 일감을 나눈 덕분에 우리마을은 버텨왔습니다. 20여년 역사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표적 역경은 지난 2019년 10월 콩나물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전소(全燒)된 사건이었습니다. 망연자실했지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불을 끄러왔던 소방관들을 비롯해 강화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복구 성금을 모았습니다. 인근 불교 사찰 전등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성금을 보내왔습니다. 대기업 거액 기부 없이 십시일반으로 20억원이 모였습니다. 여기에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과 보험금까지 30억원을 더했습니다. 덕분에 과거 공장이 가건물 수준이었다면, 새 공장은 발달장애인들의 동선(動線)까지 고려해 멋지게 지어 2020년 성탄 이브인 12월 24일에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우리마을엔 당시 성금을 보탠 3642명 전원의 이름이 적고 ‘감사합니다’란 글씨를 새긴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설운도씨는 10년 전쯤 성공회 신자(세례명 베드로)가 됐다고 합니다. 동생처럼 지내는 후배가 성공회 신자인데, 그 후배의 권유로 신자가 됐답니다. 서울 정동의 성공회성당에서 예배(미사)를 드리는데 분위기도 좋고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김성수 주교도 만났다고 하지요.
강화 우리마을과의 인연도 그 후배 덕분에 맺었다고 합니다. 후배가 김 주교에 대한 다큐를 제작하는 덕분에 동행한 적이 있다는 군요.
설운도씨는 “그날 주교님이 밥도 사주시고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보통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받을 점이 보통 많은 분이 아니다 싶었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콩나물공장도 견학하고 공장을 재건한 사연과 화재 복구를 도운 분들의 이름이 적힌 액자도 보고 감동받았답니다. 설운도씨는 “제가 가요 40년 인생인데, 늘 국민의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인데 이렇게 음지에서 좋은 일하는 분들이 계시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며 “그래서 언제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했습니다. 홍보대사를 자청한 셈이지요.
그 결실이 지난 5월 24일 열린 홍보대사 위촉식이었답니다. 이날 성공회 신부들과 발달장애인, 가족,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는데 김 주교님의 복장을 보고 다들 놀랐답니다. 가수인 설운도씨는 일반 정장을 입었는데 김 주교님은 아래위 흰색 정장에 보라색 주교 셔츠를 입으셨거든요. 다들 “주교님이 더 연예인같다”고 말했답니다.
이날 설씨는 2시간 가량 우리마을에 머물렀다고 하네요. 우리마을 친구(김성수 주교는 발달장애인을 항상 ‘친구’라고 부릅니다)들도 설운도씨를 만나 너무나 좋아하고 감동했다고 합니다. 사회자가 “설운도씨 노래 아는 곡?”하고 묻자 너도나도 손을 들며 “다함께 차차차요” “사랑의 트위스트요” “삼바의 여인요” “누이요”라고 외쳤다지요. 김성수 주교는 “우리 친구들이 설운도씨 노래를 그렇게 많이 아는 줄 몰랐다”며 웃었습니다.
설씨는 이날 위촉식에서 “40년 동안 수많은 무대에 섰지만 대부분 먹고 살기 위한 것이었는데 오늘처럼 보람있는 무대에 서게 돼 기쁘다”며 “성공회 신자가 되고 ‘성공’했다”고 말했답니다. 설운도씨는 이날 그림을 곁들인 사인을 남겨서 우리마을 친구들을 기쁘게 했답니다. 만화처럼 그린 사람 얼굴 위에 ‘우리마을 사랑해요!’라 쓰고 아래에 사인을 한 것입니다. 우리마을 관계자는 “한 장 쓰시는 데 너무나 정성스럽게 쓰셔서 거의 5분은 걸린 것 같다”고 하네요. 설씨는 “사인을 일필휘지로 흘려 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받는 분도 대충 보게 되더라”며 “그림까지 덧붙여서 오래 간직해 달라는 의미로 사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설운도씨는 “제가 홍보대사를 많이 맡았는데 그 가운데 우리마을 홍보대사는 가장 보람되고 뜻깊은 자리가 아닌가 한다”며 “언제라도 제가 필요하다면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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