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임금피크제로 청년 채용 늘어난다?..거짓말이었다

신다은 2022. 5. 3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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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박근혜 정부 정년연장하며
"고용 안정과 신규채용 여력 확보"
실제 고용효과는 제도 초반에만
기업 절반가량은 임금 큰 폭 삭감
2019년 11월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현장인력 충원, 임금피크제 폐지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임금피크제는 장년층 고용 안정과 기업의 신규채용 여력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를 이렇게 밝혔을 때, 노동자단체들은 “임금만 삭감될 뿐 고용 창출 효과는 불분명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지난 26일 합리적 보상 없이 임금만 깎기 위한 임금피크제에 제동을 건 대법원 판단은 노동자단체들의 우려가 현실화 됐음을 증명한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300인 이상)~2017년(300인 미만) 권고 수준이던 정년 60살을 의무로 정하는 일명 ‘정년연장법’(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연차에 비례해 임금을 주는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임금피크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용창출 효과, 초반에만 ‘반짝’

정부가 홍보했던 임금피크제의 고용 창출 효과는 나타났을까. 그간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지만, 제도 도입 초기와 그 이후 결과는 엇갈렸다. 제도 초기인 2016∼2017년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의 청년 고용이 늘었다거나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과 견줘 고용량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예를 들어 지난 2016년 김혜원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등은 2009∼2013년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을 대상으로 효과를 평가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14%가량 청년 고용 증가율이 높다”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60살 정년 연장 이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통상 55살로 정년을 정해두고 60살 미만 범위에서 필요에 따라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를 자율적으로 도입한 경우여서, 신규채용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비용 여력이 더 컸다. 반면, 정년이 60살로 일괄 연장된 이후 기업들은 연장에 따른 인건비를 감당해야 했기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임금 감액분을 신규 채용에까지 사용하기는 부족했다.

60살 연장 의무화 뒤 효과 사라져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정년 연장이 의무화된 2017년 이후로는 임금피크제와 고용과 상관관계가 없다거나,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결과가 주를 이뤘다. 고용노동부가 사업의 고용 영향 평가를 위해 지난 2020년 한국노동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긴 ‘60세 정년의무화의 고용효과’ 보고서에서도 임금피크제를 운영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에 제도 도입으로 인한 고령층 고용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의 ‘중고령자 계속고용 촉진의 필요성과 지원 방안’ 보고서를 보면, 2005∼2018년 기업체들의 임금피크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임금피크제가 있는 사업체는 그렇지 않은 사업체에 비해 50살 이상 고용 비중이 2.6%포인트 낮았다. 이들 기업 중 2016년 이후 정년 연장을 시행한 곳은 고용 비중이 6.0%포인트 하락했다. 이 연구위원은 “직무나 근무형태를 바꾸지 않고 임금 감액에 의존하는 제도는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의 조기 퇴직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장년층 고용 연장 효과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층 신규 채용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2021년 김승태 육군사관학교 경제법학과 경제학 조교수 등은 2005∼2017년 한국노동연구원 사업체 패널조사에 참여한 1886개 기업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고용효과 분석'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보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의 신규채용 비율이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도리어 도입 4년 뒤엔 정규직 비율이 2.5% 포인트 감소하고 비정규직 비율이 2.5% 포인트 증가해, 통계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정규직을 줄여 비정규직을 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피크제의 고용 효과가 제한적일 거라는 전망은 제도 시행 초기부터 나왔다. 임금피크제로 감액한 인건비를 기업이 반드시 신규채용에 쓰리라고 보장할 수 없고, 채용에 쓰더라도 모집, 교육 비용이 추가로 들어 감액분만으론 충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또 현실적으로 임금을 삭감한 이상 고도의 관리나 주의가 요구되는 업무를 맡기기 어렵다. 지난 2019년 국정감사 땐 임금피크제를 적용 받은 공기업 직원들이 1주에 20시간만 일하며 출장·휴가를 수시로 쓴다는 지적을 받았다.

기업 15% 임금 20~30% 삭감…23%는 30% 이상 삭감

반면 임금피크제로 인한 노동자의 임금 삭감분은 컸다.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6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보면, 임금피크제 운영 기업 가운데 평균 임금 감액율이 ‘기존의 20∼30% 수준’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1만1375개(14.9%), ‘30% 초과’라고 답한 기업은 1만7184개(22.5%)에 달했다. 두 구간을 합치면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당시 정부는 임금 감액율 기준도 세부적으로 정하지 않아 기업마다 감액율 편차가 발생하는 것을 방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임금피크제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가진 기업이 정년 연장으로 추가 부담하는 인건비를 일부 해소할 목적으로 도입된 과도기적 제도지만, 정년이 60살로 정해진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취업규칙 변경으로 도입이 가능하다. 반면 관련 지원 사업인 ‘세대 간 상생고용지원 사업’은 지난 2018년 일몰됐다.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공공사업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제 임금피크제로 인한 고령자 고용 효과는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하는데, 계속해서 제도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정부에 관련 지침을 폐기하고 노정교섭할 것을 제안하려 한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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