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경남 통영 앞바다를 화면에 옮기고 있다. 끌 대신 붓을 들었다. 조각가에서 화가로, 표현의 물성을 바꿨다. 15년에 걸쳐 푸른 선(線)을 그었다. 화면에 점차 바다가 자리잡았다. 심문섭(79)씨는 “어제의 바다와 오늘의 바다가 다르듯 작가도 한 곳에 머물 수 없다”고 말했다. 의식의 개입을 배제한 반복적 수행, 그래서 그가 그려낸 ‘제시–섬으로’ 연작은 연속적인 붓자국이 밀려오고 밀려나가기를 반복하는 조수간만의 운동성을 닮아있다. 그 힘은 최근 크리스티 홍콩 경매로 이어져 개인 낙찰 최고가(1억6000만원)를 갈아치웠다.
1970년대부터 나무·돌·흙·철 등의 재료를 그저 날 것으로 제시하거나, 조각품을 좌대 대신 벽이나 바닥에 놓는 식으로 전통에서 탈주한 ‘반(反)조각’을 주창했다. 재현이 아닌 대상의 물성과 시간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파리비엔날레(1971), 상파울로비엔날레(1975), 시드니비엔날레(1976), 베네치아비엔날레(1995·2001) 등에 진출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조각가로서 그가 추구한 전위는 회화로 이어진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제목이 ‘물(物)에서 물(水)로’인 이유다. 쉼없는 파고(波高)가 에너지로 변환된다. 6월 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