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쎄진 푸틴의 '식량 볼모전'.."제재 풀면 식량 공급하겠다"

노정연 기자 2022. 5. 3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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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러 제재 해제시 농산물 수출 가능"
식량공급 인질 삼아 서방 제재 완화 목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열린 유라시아경제포럼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을 향한 ‘식량 볼모전’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 곡창 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전 세계 식량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식량 공급을 인질 삼아 서방의 제재를 완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서방 국가들의 대러 제재가 해제될 경우 상당량의 비료와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흑해와 아조우해의 선박 안전 운항 문제, 이들 해역의 기뢰 제거 문제 등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전세계에 파급을 미칠 수 있는 식량 카드로 서방의 제재을 피할 출구를 찾으려는 속셈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흑해를 장악하면서 우크라이나는 곡물 수출길이 막힌 상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시장의 3분의1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흑해를 통해 수출된다. 특히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항구는 우크라이나가 수출하는 식량의 90%가 통과되는 거점이다. 이곳을 통한 밀과 옥수수 등 곡물 수출이 막히면 아프리카와 중동 등 주요 수요국들의 식량 위기가 커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틀어쥔 식량 공급망이 대외적으로 강력한 무기가 된 것이다. 전쟁의 여파로 이미 세계 곡물시장에서 밀 가격은 올해 초보다 60% 오르며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해제와 식량 공급을 맞바꾸려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이어져 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봉쇄를 풀려면 서방이 먼저 대러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러시아의 비료와 농산물 공급 증가는 세계 식량 시장의 긴장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이는 물론 관련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식량 무기화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지난 26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식량으로 세계를 인질로 잡고 있다”며 “푸틴은 근본적으로 전 세계 최빈곤층의 기아와 식량 부족을 무기화하고 있다” 비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의 흑해 항구 봉쇄로) 세계 밀 가격이 치솟았고 취약 국가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면서 “이는 기근과 곡물을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식량과 비료 수출을 통해 식량 위기를 극복하는데 기여를 할 뜻이 있다”면서도 식량난은 러시아가 아닌 서방의 수출·금융 제재 탓이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 세계 식량 위기에 대한 경고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엔은 올해 추가로 5000만명이 기근에 시달릴 것으로 추산하며 실제로는 더 많은 이들이 재앙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각 나라의 곡물 재고가 소진되는 7월에는 ‘식량 재앙’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의 항구 봉쇄로 현재 2200만t의 곡물이 저장고에 묶여 있다”며 “많은 나라에서 지난해 수확한 곡물 재고가 소진되는 7월에 진정한 재앙이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방의) 제재 때문에 식량 수출을 허락할 수 없게 됐다는 러시아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웃기는 얘기”이며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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