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암시민 살아진다" 했지만 연좌제로 고통..4·3 재심 34명 무죄

허호준 2022. 5. 3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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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재판 특별재심 4명, 직권재심 30명
유족들, 무죄 선고에 '참아온 얘기' 토로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변호인단이 31일 제주지법에서 열린 4·3 군사재판 직권재심 및 일반재판 특별재심 무죄판결에 따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어릴 때부터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나를 생겨놓고(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행방불명되니까 아버지 성으로 입적하지 못하고 어머니 성인 오씨로 살아왔습니다. 20살 때에야 아버지 고향을 찾아 김씨로 성을 변경했습니다. 학교도 너무나 어렵게 입학했는데, 어린 나이에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살아가는 게 너무나 어려운 내게 어머니는 ‘살암시민 살아진다’고 했습니다.”

31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 선 김완옥(74)씨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떨리듯 흘러나오자 법정은 숙연해졌다. 제주지법 형사4-2부(재판장 장찬수) 심리로 4·3 일반재판 특별재심과 군법회의 직권재심 재판이 잇따라 열린 이날 재판정에는 4·3 유족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웠다.

김씨의 아버지 김두창은 농사만 짓던 4·3 때인 1948년 집을 나섰다가 영문도 모른 채 행방불명됐다. 가족들은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경찰에 끌려갔고 목포형무소에서 복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글을 모르던 아버지는 경찰의 고문과 강압에 ‘없는 죄’를 자백했다고 했다.

김씨는 ”어느 날 아들이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낸 판결문을 봤다. 아버지가 오른팔을 쓰지 못하고 위가 썩었다고 돼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평소 아버지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많이 울었다”며 “오늘 무죄 판결을 내려줘서 너무 고맙다. 억울했던 마음이 사라진다”고 했다. 장 재판장이 “꿈에 아버지가 나타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오씨는 “아버지가 꿈속에서 ‘네가 가정을 일구고 사는 게 좋다’했다”고 답했다.

이날 재판부는 일반재판 특별재심 관련 4명과 직권재심 관련 30명에 대해 “공소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장 재판장은 이날 재심 대상자인 희생자들의 자녀와 동생 등 유족들에게 “참아왔던 얘기를 할 기회를 주겠다”며 “발언하실 분들은 발언하시라”고 했다.

4·3 군법회의 희생자인 고행준의 동생 고운택(84)씨는 형이 연행될 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고씨는 “캄캄한 밤 중에 형님과 같이 누워있었는데 3명의 남자가 와서 형님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했다. 어머니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그 사람들은 ‘잠깐 데려가서 조사만하고 보내겠다’고 했지만 여태까지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고씨의 형은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공항)에서 희생됐고, 70여년 만에 발굴된 유해의 유전자 감식을 통해 형을 찾아 4·3평화공원에 안치했다.

고씨는 연좌제로 피해입은 사실도 털어놓기도 했다.

“아들이 경찰에 합격했는데 어디선가 자꾸 와서 ‘고운택 아들이 어떻게 합격했느냐’고 묻고 또 물었어요.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아들한테까지 이렇게 하느냐’고 반발했어요. ‘어디서 왔느냐.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해도 말도 안 해요. 알고 보니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온 것 같았습니다.” 고씨는 “그동안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 고통이 끝났다”며 재판부와 검찰에 고마움을 전했다.

또 다른 4·3 군법회의 희생자 양재춘의 딸 양정자(81)씨는 “당시 나 7살, 동생 5살, 3살, 낳은 지 엿새 밖에 안된 아기 동생이 줄줄이 있었다. 어릴 때는 뭔지도 모르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지옥 같은 삶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세상 살았다. 기가 막혀 할 말이 없다”고도 했다.

유족들의 발언을 경청하던 재판부는 “오늘 이후부터는 유족들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셨으면 좋겠다”며 재판을 마무리했다.

제주4·3유족회(회장 오임종)는 재판이 끝난 뒤 제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사재판 및 일반재판 4·3 희생자에 대한 무죄판결을 환영한다”며 “희생자들에 대한 명에회복이 차질없이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광주고검 산하 4·3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꾸려진 이후 지난 3월29일 1차 직권재심부터 이날 6차 직권재심까지 무죄판결을 받은 4·3 희생자는 130명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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