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RM인증샷 없어도..5만여명 다녀간 韓채색화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2022. 5. 3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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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국가와 고려·조선을 거쳐 현대미술까지 이어진 화려한 한국 채색화의 원류를 조명한 기획전 '한국 채색화의 흐름'에 개막 이후 지난 31일까지 오전까지 70여 일 동안 5만 8000명이 다녀갔다.

경남 진주시가 주최해 국립진주박물관과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지난 3월 22일 개막해 6월 19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청룡 모사도를 시작으로 근대화가 이성자와 박생광 등 채색화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들 74점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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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한국 채색화의 흐름' 展]
'청룡 모사도'·'천산대렵도' 등
평소 보기힘든 보물급 작품 모아
전문가에 전시 기획 자율성 보장
개막후 70일간 5만8000명 발길
진주시가 기획한 '한국 채색화의 흐름' 전시에 지방으로는 이례적으로 70여일간 5만80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관람객들이 정교한 묘사와 화려한 채색으로 완성된 조선시대 초상화들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립진주박물관
[서울경제]

고대 국가와 고려·조선을 거쳐 현대미술까지 이어진 화려한 한국 채색화의 원류를 조명한 기획전 ‘한국 채색화의 흐름’에 개막 이후 지난 31일까지 오전까지 70여 일 동안 5만 8000명이 다녀갔다. 경남 진주시가 주최해 국립진주박물관과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지난 3월 22일 개막해 6월 19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청룡 모사도를 시작으로 근대화가 이성자와 박생광 등 채색화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들 74점이 선보였다. 한국미술사 전반을 관통하는 최초의 채색화 기획전이라는 의미가 커 전국 각지의 미술 전문가들이 찾아가기도 했지만,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평일 평균 1000명 이상, 주말 평균 2000명이 방문하고 있다. 한 공립미술관 관계자는 “최근 전시 관람 트렌드로 볼 때 이건희 회장의 기증작 전시도 아니고, 방탄소년단의 RM이 SNS에 인증사진을 올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받은 대구미술관은 2개월 전시에 4만명, 전남도립미술관에는 2개월간 3만명이 다녀갔다.

서울에서 ‘천 리길’ 떨어진 진주까지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진 이유는 뭘까? 그 첫 번째 성공비결은 ‘작품의 힘’.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작품들을 여러 소장처에서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유물 전시 환경을 엄격하게 따지기 때문에 작품 대여가 까다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시대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천산대렵도’를 빌려준 게 대표적이다. 삼성 리움미술관 소장의 ‘경기감영도’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데, 관리와 포졸의 옷 색까지 생생하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채색화는 물론, ‘책가도’로 이름을 떨친 이형록의 ‘책가문방도’를 만날 수 있다. 왕좌의 뒤를 장식하던 ‘일월오봉도’를 민화풍으로 재기발랄하게 그린 ‘일월부상도’는 개인소장품이라 공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초상화의 거장 채용신의 작품으로 전하는 ‘팔도미인도’가 선보였고, 이당 김은호가 그린 조선의 3대 미인 춘향·논개·아랑의 초상화가 최초로 한 곳에서 전시됐다. 중박과 리움 외에 국립현대미술관,경기도박물관,가나문화재단,이영미술관 등 공사립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의 작품들이 어렵사리 한 자리에 모였다.

관람객들이 이당 김은호가 그린 조선의 3대 미인 춘향, 논개, 아랑의 초상화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제공=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두 번째 성공비결은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기획력’이다. 보통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한 전시에는 각종 지역 이권이 개입하기 마련이지만, 진주시 측은 전문가들에게 일임했고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조은정 미술사학자 등이 자율성을 보장받아 전시를 꾸렸다. 이를 통해 그동안 한국화는 곧 수묵화로 여겨지던 편견을 깨고 궁중회화의 화려함과 이후 민화로 이어진 생활장식화의 미감을 발굴했고, 현대로 이어지는 맥락을 찾아냈다. 최열 평론가는 “한국의 채색화를 ‘민화’에 국한해 생각하는 것은 마치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동양과 아프리카 등지의 문화를 ‘민속예술’의 관점에서 읽었던 것과 유사하다”면서 “채색화를 보다 넓은 맥락에서 보고, 근대정신의 표현이라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침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도 오는 1일부터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가 개막하는 등 한국의 채색화를 한국미술사의 큰 줄기에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전시 관람을 기회로 ‘진주 여행’이 늘어난 것도 흥행요소로 분석된다. 전시가 한창인 국립진주박물관은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김수근의 유작이며, 남강이 내려다보이는 진주성 내 위치하고 있다. 진주혁신도시에 외떨어진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도 최근 이성자 화백에 대한 국내외 주목이 활발해지면서 명소가 되는 중이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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