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5G 중간요금제 '꼼수' 안 된다

김양혁 기자 2022. 5. 3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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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이동통신사를 향한 압박을 본격화했다. 5세대 이동통신(5G) 중간요금제 도입을 예고하면서다. 애초 이번 대통령 선거 기간 ‘단골 공약’이었던 가계 통신비 정책이 빠지면서 대선 후보들이 통신 정책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던 게 사실이다. 이를 고려하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수면 위로 올라 온 중간요금제 도입 현실화는 반길만한 일이다.

국내 5G 가입자들은 사실상 10GB(기가바이트)를 제공하는 월 5만원대 요금제와 110GB를 주는 7만원대 요금제 ‘양자택일’ 상태에 처해있다. 5G 가입자의 월평균 데이터 이용량은 23~27GB다. 데이터 소모량이 많은 상위 5% 사용자를 제외하면 18~21GB로 ‘뚝’ 떨어진다. 5G 가입자들은 10GB 안팎의 데이터 때문에 매월 2만원 비싼 110GB 이상을 제공하는 ‘고가(高價)요금제’를 택할 수밖에 없다.

사실 5G 중간요금제 도입은 새 정부 들어서 나온 내용은 아니다. 국정감사 시기만 되면 가입자들의 사용량을 고려하지 않은 요금제로 이동통신사들이 배를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이른바 ‘부당이득’이다. 이는 5G 품질 문제와 맞물리며 국감 시즌 여야 의원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중간요금제 도입이 현실화하는 것은 새 정부에 찍히지 않겠다는 이동통신사의 의지가 다분하다. 지난해 국감 때까지만 해도 “검토하겠다”라고만 했던 이동통신사는 올해 “다양한 요금제 출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라며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5G 중간요금제 도입 예정 시기는 올해 3분기다. 이동통신사들은 올해 국감장에서 최소 ‘면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간요금제의 실효성은 미지수다. 중간요금제의 월 비용은 현재 5만원대(10GB)와 7만원대(110GB) 사이인 6만원대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오히려 7만원대 요금제 가입을 부추기는 ‘미끼 요금제’가 될 우려도 있다.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한 정책이 고가요금제로 향하는 길목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간요금제의 본질은 ‘쓴 만큼 내겠다’이다. 10GB와 110GB 사이 50GB 요금제 하나를 끼워 넣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용자들이 이용하는 15GB, 20GB와 같이 5GB든 10GB든 일정 단위로 요금제를 세분화해야 한다.

실제 이미 해외에서는 5G 가입자의 데이터 소모량을 고려한 요금제들이 여럿 출시돼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영국 O2는 5·12·25·60·150GB 등 다양한 구간의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 쓰리 역시 1·4·8·12·30·100GB 등의 요금제를 출시했다. 중국과 독일 통신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차이나모바일은 5G 요금제를 30·40·60·80·100GB 등으로 구성했고, 독일 보다폰은 4·15·30·40GB 등의 요금제를 제공한다. 유독 국내에서만 존재하지 않는 중간요금제는 통신 3사로 고착화한 국내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한정된 시장에서 ‘나눠먹기식’ 영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5G 서비스 품질에 비해 과도하게 책정된 5G 요금제 자체도 문제다. 한국소비자연맹이 19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5G 관련 주요 피해에서 44.5%(888명)가 ‘통신 불량’을 겪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통신사들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지국을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수도권 위주의 기지국 구축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기준 5G 기지국 분포율을 보면 전체 약 20만개 기지국 중 45.5%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부산과 경남은 각각 7.8%, 5.6%를 기록했고, 광주와 전남은 2%대에 불과했다. 통신 불량을 호소하는 가입자에게 사업자들은 “아직 기지국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다”, “단말기 문제” 등을 이유로 들며 나 몰라라 하는 영업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국내 5G 가입자는 200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 30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제는 가격을 내려 박리다매를 할 수 있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중간요금제 도입뿐 아니라, 애초 5만원부터 시작하는 요금제 자체를 손질해야 할 시기다. 이동통신사들이 ‘꼼수’ 5G 중간요금제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세분화한 요금제를 기반으로 한 요금제 전면 개편을 뒷받침해야 한다. 이참에 ‘부당이득’이라는 꼬리표도 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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