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위반 차가.." 장기기증 25세 신입사원 아빠의 눈물
"횡단보도 신호위반 차량만 없었다면..."
지난 25일 장기기증으로 3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난 고 최현수씨(25·사진)의 아버지 최명근씨는 "기증받은 세분 감사합니다. 우리 딸이 못다 산 삶을 건강하게 대신 살아주세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지금도 딸의 교통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던 12일 아침을 잊지 못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 그대로였다. "우리 딸이 밤에 퇴근하던 중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을 보고 건너는데 신호위반 차량이 사고를 냈다는 거예요." 그는 한참 뒤에야 아들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딸의 사고소식을 알았다.
최명근씨의 1남2녀 중 둘째인 고인은 한성과학고·고려대를 졸업하고 올해 SK에너지에 입사한 재기 발랄한 신입사원이었다. 어려운 취업관문을 뚫어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최명근씨는 "딸은 늘 가족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 분위기 메이커였고, 공부 등 모든 것을 자기가 척척 알아서 했다"며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내 생명과 바꾸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딸이 뇌사에 빠지자 가족들은 고인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나눠주어 남은 시간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심장, 신장(좌, 우)을 기증해 3명을 살리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고 최현수씨의 사례처럼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는 국내 10대 사망원인(남자) 중의 하나다. 암, 심장병을 조심해도 한 순간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0대 연령대의 사망원인 1위이기도 했다. 요즘은 화물차 속도제한 장치 의무화, 안전 의식 등이 높아져 보행자 사망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1만대 당 사망자 수 등 교통사고 수치가 OECD 평균에 비해 여전히 높다.
고 최현수씨처럼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도 달려드는 차량이 있으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지난 25일에도 경남 창원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학생이 60대 여성이 몰던 SUV 차에 치어 숨졌다. 경찰은 SUV 운전자가 신호를 위반해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1분 빨리 가겠다는 조급한 생각이 귀중한 생명을 앗아 간 것이다.
음주운전 사고는 코로나 거리 두기 해제 이후 크게 늘고 있다. 지난 19일 인천 서구의 한 도로에서 보행신호를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70대 남성이 20대 음주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이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0.08% 이상) 수치였다.
유명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배우 김새론은 지난 18일 오전 8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학동사거리 인근에서 운전하다 변압기 등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논란이 커지자 김새론은 다음날인 19일 소속사를 통해 "음주운전으로 발생한 사고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음주운전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의 음주운전을 비난하는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역생활이 짧기로 유명한 개그·방송계에서 30년 이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경규는 "술 약속이 있으면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정한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의 롱런 비결은 이처럼 철저한 자기관리가 바탕이다. '음주운전 절대 금지'는 공인의 1순위 준칙이다. 이는 유명인, 공무원, 회사원을 가리지 않는다. 음주운전 전력이 있으면 승진에서 누락되고 퇴사도 각오해야 한다. 배우·방송인은 작품에서 제외된다. 생명과도 같은 이미지 추락은 당연하다. 영원히 무대에서 퇴장하는 연예인도 많다.
음주운전은 한 순간의 술기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미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악습 중 최악의 악습이다. 한 사람의 음주운전 습관으로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피해자가 가장이라면 가족들이 평생 고생하며 고통에 신음할 수 있다.
고 최현수씨는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준법정신을 발휘했어도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장기기증으로 세 사람이나 살렸다. 횡단보도 사고, 음주운전은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만큼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술 약속이 있으면 걸어서 간다"는 방송인의 각오는 기본을 강조한 것이다.
고 최현수씨는 장기기증 뿐 아니라 교통사고 예방에서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울린 종소리로 인해 거리에서 숨지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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