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마지막 습지 지키는 ‘작은 거인’ 개개비사촌

한겨레 2022. 5. 3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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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작은 몸집에 갈대숲 울리는 ‘삐릿∼’ 금속성 울음소리
둥지 여럿 만들어 암컷 유혹, 암컷 맘에 들면 완성해 짝짓기
갈대꽃에 앉은 흔하지 않은 여름 철새 개개비사촌.

지난 5월7일 모처럼 인천시 중구 영종도로 탐조를 나갔다. 1992년 11월21일 남측과 북쪽 방조제 공사를 시작한 영종도는 갯벌이 매립되어 2001년 3월29일 김포국제공항의 국제선 기능을 모두 이관받아 공식 개항했다. 지금도 개발은 이어지고 있다. 덤프트럭이 요란스럽게 움직인다. 그나마 개발지 한편에 위태롭게 남아있는 습지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어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법정 보호종인 맹꽁이 덕분에 살아남은 습지에 개개비사촌도 함께 산다.
먹이 사냥을 끝내고 몸단장 하는 저어새.
혹부리오리들이 모여들었다.

저어새도 메말라 가는 습지에서 먹이를 찾느라 분주하게 부리를 저어 댄다. 검은머리물떼새는 한창 짝짓기 중이다.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겨울 철새인 황오리와 혹부리오리는 눌러앉았을까. 번식지를 향해 뒤늦게 떠나가는 도요새들이 여기저기 모여 오글오글 들끓는다. 어렵게 남은 아주 작은 습지가 이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인 셈이다. 서식지의 끊임없는 개발에 올해는 이상기온마저 더해 그동안 탐조를 다니면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환경에 관심 없던 일반인들도 생태의 변화를 느낄 정도다.

하늘 높이 파도치듯 날며 울어대는 개개비사촌.
작지만 당당한 개개비사촌. 넓은 갈대숲은 개개비사촌 차지다.
갈대숲에서 언제나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개비. 개개비와 개개비사촌은 갈대숲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거리가 먼 다른 계통이다.

오늘따라 아주 맑은 날씨다. 하늘 높이 종달새가 지저귄다. 갈대숲 위 20m 남짓 하늘에선 개개비사촌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다니며 울어댄다. 단조로운 금속성 소리로 연속해서 ‘삐릿, 삐릿, 삐릿’ 하고 운다. ‘개, 개, 개 ,삐, 삐, 삐’ 하고 우는 몸길이 18.5㎝의 개개비는 가장 시끄러운 새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런데 몸길이 12㎝의 작은 몸집에 견줘 큰 울음소리를 내는 개개비사촌도 대단하다. 왜 개개비의 사촌이 되었는지 알 것 같다. 그러나 둘은 계통이 달라 개개비가 휘파람샛과에 속하지만 개개비사촌은 따로 개개비사촌과를 이룬다.

흔들리는 갈대에 앉는 개개비사촌은 균형을 잡기 위해 다리를 넓게 벌린다.
갈대숲 사이로 이동하는 개개비사촌.
갈대 사이를 오가는 개개비사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개개비사촌은 갈대와 띠가 무성하게 조화를 이룬 넓은 습지에 터를 잡고 눌러앉았다. 이곳은 둥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거미줄과 주식인 거미와 곤충이 풍부해서 개개비사촌이 이 자리를 놓칠 리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없이 울어대며 갈대꽃 위에 쏜살같이 내려와 앉았다가 날아가기를 반복한다. 무척 활동적이다. 우거진 갈대숲 사이로 이동하며 날 때는 파도 모양으로 재빠르게 높이 날아 잘 보이지 않는다. 소리로 위치를 가늠하고 찾아낼 뿐이다. 넓은 갈대 습지를 차지한 개개비사촌이 갈대 습지의 지배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개개비사촌은 넓은 갈대숲을 영역으로 정하고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순찰한다.
부채처럼 펼치는 꼬리 끝 흰색 깃털이 특징이다.

바닷바람이 불어 나부끼는 갈대꽃에 앉은 개개비사촌은 갈대와 한몸이 되어 자유롭게 흔들린다. 자세히 추적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찾았다가도 놓치기 일쑤여서 촬영이 굉장히 힘들다. 일주일을 관찰했지만 바닷가 특성상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갈대가 개개비사촌의 보호색이 되기도 한다. 개개비사촌은 몸 윗면이 황갈색 바탕에 흑갈색 줄무늬가 명확하고 꼬리 끝에 뚜렷한 흰 무늬가 있으며 그 안쪽에 검은 가로띠가 여러 개 있다. 몸 아랫면은 흰색이며 옆구리는 황갈색이다.

개개비사촌은 항상 갈대 꼭대기에 앉아 주변을 살피며 영역을 알린다.
개개비사촌은 잠시도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수컷은 일반적으로 일부다처제다. 이른 봄부터 여름에 걸쳐 수컷 개개비사촌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지저귀면서 자신의 영토를 매우 공격적으로 방어한다. 이 기간에는 정성을 다해 여러 개의 둥지를 만들고 여러 마리의 암컷을 유혹하여 둥지마다 암컷을 초대한다. 수컷이 만든 둥지가 암컷의 마음에 들면 암컷이 둥지를 완성하고 알을 낳는다.

자주 이동한다.

둥지는 아주 낮은 높이의 갈대, 띠, 억새 등 부드럽고 가느다란 풀줄기를 거미줄로 엮어 긴 달걀 모양으로 만들며 출입구는 위쪽에 만든다. 번식기는 5~7월이고 알은 4~6개를 낳는다. 알은 엷은 푸른색 바탕에 자색과 짙은 적갈색의 점이 있다.

알을 품는 기간은 12~14일이며 새끼는 태어나 2주간 둥지에 머물다 둥지를 떠난다. 개개비사촌은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게 번식하는 여름 철새며 몹시 적은 수가 월동하기도 한다. 남부 유럽, 아프리카(사막과 열대 우림 밖), 인도, 인도차이나, 말레이반도, 대만, 중국 남동부, 일본, 호주 북부 등지에서 번식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땅바닥을 바라보는 개개비사촌.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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