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한반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꺼내든 바이든의 숨은 속내
(시사저널=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5월20~22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머릿속은 온통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그리고 11월8일의 중간선거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몸은 한국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갔을 것이다.
물론 5월21일 발표한 한미 공동성명에서 취임 11일째인 윤석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긴 했다. 북한 도발 시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미 연합방위 태세에 대한 상호공약을 확인한 건 기본이다. 경제안보와 공급망 등에 대한 협력 태세도 다지면서 지금까지 한국을 찾았던 어떤 미국 대통령보다 경제에 무게를 뒀다. 자신이 지난해 10월 제안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대한 한국의 참여도 약속받았다.
한국의 글로벌 역할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한미 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눈여겨볼 점은 바이든이 과거 부통령 시절 이미 가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방한했던 모든 미국 대통령이 해왔던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생략한 점이다. 대신 경기도 평택의 오산공군기지 지하벙커에 있는 국군 공군작전사령부 산하 항공우주사령부(KAOC)를 찾았다. 바이든은 이날 한미 공군이 함께 운영하는 KAOC에서 텅빈 북한 하늘을 확인하고, 이 기지의 지상에 주기된 미 공군 1호기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일본으로 향했다. 바이든이 현재 난마처럼 얽힌 한반도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바이든 외교 행보, 아세안과 인도 지지 얻는 데 실패
사실 바이든은 정치적으로 백척간두에 서있다. 내우외환으로 불안하고 초조하다. 우선 미국 내에선 치솟는 물가 등으로 지지율이 39%로 떨어졌다. 취임 이래 40% 이하로 떨어진 건 처음이다. 이래서야 올해 11월의 중간선거뿐 아니라 2024년 11월의 재선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원래 미국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에겐 불리한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연방 상·하원 구도를 보면 바이든에게 중간선거는 정치적 운명의 갈림길이 된다. 하원은 2020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222석, 공화당이 213석을 각각 차지해 양당 차이는 겨우 9석이다. 상원은 민주당 48석에 민주당 지지 성향 무소속 2석, 그리고 공화당 50석으로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그나마 민주당의 48석도 이른바 '바이블 벨트'에 속한 보수 지역인 남부 조지아주의 2021년 1월 연방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두 석을 모두 차지하는 천운 끝에 간신히 유지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런 조지아주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주지사(현재 공화당 소속)와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워녹의 연방상원의원 한 자리, 그리고 연방하원의원 전원을 뽑는다. 바이든으로선 모든 신경을 이곳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노심초사의 계절이다.
사실 바이든에 대한 미국 내 평가는 녹록지 않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하는 현재의 버거운 상황을 바이든의 외교적 실책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마찰에 이어 러시아로 인한 석유·가스·목재·곡물 등 원자재 부족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불러 미국도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포스트 코로나에 따라 새롭게 열리는 글로벌 경제의 호기를 놓치고, 새로운 국제 규범·질서 속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국익 확대는커녕 기존의 위상을 유지하기도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바이든이 1968년 대선에서 베트남전으로 재출마를 스스로 포기한 린든 존슨의 뒤를 이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치(外治)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바이든은 방한에 앞서 5월12~13일 워싱턴DC에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수뇌들을 모아 파트너십 설정 45년 만에 미국-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열었다. 군부가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전복한 미얀마를 제외한 9개국 대표가 참석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들과 1시간의 환영 만찬과 2시간의 전체 회의 등 겨우 3시간 동안 대면했을 뿐이다. 관계 강화를 위한 이니셔티브도 1억5000만 달러에 그쳤다. 결국 홀대 논란 속에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 공동성명에 들어가지 않는 등 대러·대중 압박에서 파열음만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5월20~22일 한국을 거쳐 일본을 방문한 바이든은 미·일 정상회담을 한 뒤 24일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정상회담을 열었다. 바이든은 IPEF 동참에만 인도의 지지를 얻었을 뿐, 대러 제재와 비난에는 인도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중국 견제'와 '일자리 창출'이 최대 목표
그나마 바이든 입장에서 짭짤한 소득은 한국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조지아주 전기자동차 공장에 105억 달러를 투자하고, 삼성전자가 170억 달러를 텍사스주 반도체 공장에 투자하기로 한 것은 바이든에게 그야말로 '가뭄 속 단비'다. 중국에 대항하는 데 중요한 반도체와 전기차 분야에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자국 유권자들에겐 자신의 치적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서 대중(對中) 견제와 중간선거 호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일자리도 8000개가 생긴다고 한다.
사실 미국은 해외에 나간 자국 기업들의 '리쇼어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왔다. 생산기지를 해외로 내보낸 기업엔 법인소득세를 21%에서 28%로 올리고, 미국으로 회귀한 기업에는 이를 10%포인트 낮춰주는 파격적인 유도책이다. 이를 통해 지난해에만 1300개 기업이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되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는 충분히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적인 성과이자 정치적인 업적이 된다. 이는 지난해 1월 백악관 주인이 공화당의 트럼프에서 민주당의 바이든으로 바뀌었지만 경쟁국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내에 일자리를 만든다는 미국 최대의 경제 목표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중국 견제와 일자리에선 민주·공화가 따로 없는 셈이다.
게다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연방상원 장악에 크게 기여한 조지아주에 대한 한국의 대규모 투자이니 바이든으로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바이든의 한국 기업 투자유치는 그야말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얻은 형국이다. 한국에 도착한 바이든 대통령이 DMZ행을 사양하고 기업 두 곳을 찾은 속내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냉정하게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된다. 국정과제가 오로지 북핵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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