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여수 영취산, 진달래에 파묻혀.. 막걸리보다 로제 와인이 딱!
글·사진 민미정 2022. 5. 31. 10:01
영취산 가마봉전망대에서 하룻밤
퇴근시간이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효주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꽃 보러 가요!!” 스멀스멀 SNS를 물들이는 봄 꽃 소식에 나도 마음이 설레던 참이었다. 작년 일림산 철쭉 산행을 함께했던 김정미와 셋이서 다시 봄 꽃 헌팅을 떠나기로 했다. 진달래가 한창인 영취산으로 정했다. 여수에 위치한 영취산은 해발 510m로 비교적 낮은 산이다. 코로나 이전까지 매년 4월 첫째 주 진달래축제가 열렸던 만큼 진달래를 보기에 알맞은 시기였다.
돌고개 군락지와 골망재 군락지가 내려다 보이는 가마봉전망대를 숙영지로 정했다. 핑크빛 진달래를 바라보며 낭만적인 1박2일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심술궂은 꽃샘추위는 물러날 생각이 없나 보다. 공용장비를 나누고 식단을 공유했다. ‘산행이 쉬우니까 봄 분위기 좀 내려고 향긋한 로제 와인을 준비했어’ 그러자 두 사람은 그에 맞는 메뉴들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먹거리 얘기에 단톡방이 시끌벅쩍 했다. 과카몰리 카나페, 카프레제, 크림 치즈 이외에 견과류나 과일 등 비화식 메뉴로 추려졌다. ‘우리 이러다 산에다 와인 바 차릴 기세!!’ 안 될 게 뭐가 있나? 1년에 단 한 번뿐인 진달래 캠핑이 아니던가? 마음 같아선 부엌을 통째로 배낭에 넣고 싶었다.
여천 역에 도착하자마자 근처 맛집으로 이동해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진달래 헌팅하러 출동 준비 완료! 산행 들머리로 가는 도로가에 화려한 벚꽃나무가 즐비했다. 메인 요리 전에 맛보는 에피타이저 같다고나 할까? 세 여자는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쉴새 없이 감탄사를 쏟아냈다. 머지않아 돌고개 주차장에 도착했다. 먼저 차에서 내린 김효주가 환호성을 질렀다. 영취산이 상춘객을 맞이하기 위해 분홍색 꽃으로 한껏 치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쁜 꽃을 맛보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임도길을 따라 가파른 산행이 시작됐다. 말없이 걷던 김정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그녀의 늘어지는 말꼬리에 궁금증이 더해진다. “우리 계속 이런 길은 아니지?” ‘5분만 더 가면 돼’라는 거짓말로 안심시켜줄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근사한 진달래밭이 곧 우리를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쁜 꽃을 맛보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요망한 것이 사람을 꽃으로 꼬셔놓고 이 고생을 시키네.” 아직 무거운 배낭이 익숙하지 않은 김정미의 독설에 웃음이 빵 터졌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영취산 중턱에 이르자 여수바다를 무색하게 만드는 하얀 건물이 빼곡한 여천 공단이 눈에 들어왔다. 굴뚝에서 쉴 새 없이 뿜어내는 하얀 연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오르막은 계속 이어졌고, 능선에 올라서자 드디어 진달래 군락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절정은 아니라서 고슴도치 가시 같은 잔 나무 끝에 군데군데 진달래가 새초롬하게 피어 있었다.
김효주가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우와~ 너무 예쁘잖아요! 나보다는 별로지만! 크크크” 그에 질세라 나도 외쳤다 “아니 너보다 별로이면 저 진달래가 얼마나 별로인거야~?” 그녀는 멋쩍은 듯 더 크게 웃어댔다. 숙영지에 가까워질수록 진달래는 핑크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 더 짙고 풍성했다.
좁은 진달래 터널을 지나려다 보니,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잠깐씩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배낭을 보고 흥미로워하는 어르신들은 우리를 말로 군대에 보낼 기세였다. “훈련 중인가? 씩씩하네!” 이제는 익숙해진 말들이다. 그러다 한 어르신의 질문이 들어왔다. “텐트는 몇 개 쳐요?” “텐트요…? 저희는 큰 거 한 동이오.” 백패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도 있어서 전망대 자리를 장악한다고 생각할까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거기서 몇 명이 잘 수 있어요?” 가끔 숙영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구체적인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아… 세 명이오.” 그러자 옆에 있는 지인을 가리키며 “아~ 그럼 안 되겠네. 여자들끼리 밤에 무서울까봐 이 친구 보내 줄려고 했는데! 하하”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지금 저걸 농담이라고 던지는 건가? 한대 얻어 맞은 느낌, 언어폭력, 성희롱이다! ‘에잇!! 이 신성한 진달래 앞에서!! 퉤퉤퉤!!’ 대꾸할 가치도 없어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다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지 않도록 얘기했어야 하는데,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됐다. 분한 마음을 진달래로 정화시키자!
‘진달래 영업’에 넘어가다
돌고개 진달래 군락지가 내려다 보이는 가마봉전망대에 도착했다. 반대쪽으로도 여천공단과 더불어 여수바다가 보이는 전망대가 있었지만,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인간이 만든 구조물을 감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도 군데군데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아직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데크 한 켠에 배낭을 모아두고 정상쪽 데크도 살필 겸 움직였다. 돌고개 군락지만큼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성질 급한 나무가 먼저 진달래 영업을 하고 있었다. 화려함에 이끌려 진달래 속에 파묻혀 사진을 찍었다.
“한 명씩 들어가서 밝게 웃어봐!”
고프로의 광각렌즈로 핑크색 공작새 마냥 화려하게 펼쳐진 진달래를 통째로 담아냈다. 나랑 오래전부터 함께 산행을 했던 김효주는 내가 어떤 위치에서 포즈를 좋아하는지 잘 안다. 게다가 그녀는 웃음이 많아 단번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사진에 담겼다. 하지만 평소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김정미는 눈을 감고 또 감았다. “야! 김정미!! 너 지금 나 애 먹이려고 일부러 눈 감는 거지!? 타이밍 맞춰 눈감는 것도 능력이다. 인정~” 너스레를 떨었다. “나 사진 찍기 싫다고!” 함께 백패킹 다닌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매번 한결 같은 주제로 옥신각신이다. 사진에 진심인 나와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그녀. 하지만 나에게 포기란 없다. 수십 번 셔터를 누른 뒤에야 맘에 드는 사진을 건졌다. “나이스!” 화려한 진달래 속에서도 그녀가 더 돋보이는 사진. 좀 과장하자면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된 기분이랄까?
정상 쪽 데크에는 이미 다른 백패커가 배낭을 내려놓고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풍경은 가마봉이 더 나았다. 해가 기울자 냉각기가 찾아왔다. 진달래에 둘러싸여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해 놓고 미니 와인 바를 재현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야 얼어죽겠다! 빨리 쉘터 치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늑한 쉘터 안, 무겁게 짐을 지고 올라온 김효주에게 감사했다. 진달래와 어울리는 연핑크 로제 와인을 꺼냈다. “오~~” 친구들은 볼륨 3 정도의 소리를 질렀다! 캠핑 갈 때나 쓰는 플레이팅용 도마를 꺼냈다. 이번에는 볼륨이 조금 높아진 ‘5’ 정도 되는 감탄이 들렸다. “오~~~~”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이번 진달래 헌팅의 비밀 병기!! 엄마의 김치냉장고 김치통을 꺼내자 둘은 호기심의 눈초리로 쏘아 보았다. “짜잔~” 투박한 뚜껑을 열자 돌고래 뺨치는 볼륨 10 정도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오~~~~~~~~~~!!” 김효주가 생일 선물로 보내준 앙시 빈티지 와인잔 3개를 고이고이 모셔온 보람이 있다.
으깬 아보카도에 잘게 썬 양파와 토마토를 섞어 과카몰리를 만들어 크래커에 얹고 카나페를 완성했다. 슬라이스 한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 위에 발사믹 소스를 곁들인 카프레제. 그리고 달콤 쌉싸름한 와인의 풍미를 더해 줄 치즈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분명히 사람들이 보면 산에서 저렇게까지 해야겠냐고 하겠지?” 이 낭만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연과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본인이 체력만 된다면 부엌을 통째로 옮겨와도 상관 없을 것이다. 모두 개인의 취향일 뿐. 모든 걸 세팅하고 나니 제법 근사했다. 다만 빨간 쉘터 덕분에 조명도 빨간색이 됐다. 김효주가 한마디 했다. “다 좋은데 정육점에서 먹는 것 같아요!!” 다시 한번 빵 터졌다. 말 그대로였다. 오늘 진달래 헌팅과 정육점 와인 바는 성공적이었다.
잠들기 전 야경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반대쪽 데크에 텐트 한 동이 있었다. 바닥이 울릴까 조심스레 걸으며 데크 끝으로 다가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혀 빛을 잃은 진달래와는 달리, 낮 동안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여천공단은 불야성을 이루며 영취산을 야경 명소라 할 수 있을 만큼 멋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멋있다.” 이것도 영취산의 일부인 것이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텐트 문을 열었다. 동쪽 하늘에 붉은 띠가 드리워졌다. “곧 사진작가들이 올라오겠는데? 우선 짐 정리 먼저 하자” 그런데 올라오는 사람마다 여기는 안 되겠다며 자리를 떴다. 전문가들이 봤을 때 데크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 듯 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반대쪽 데크에 사람들이 긴 삼각대를 세워 놓고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쪽 텐트는 이미 철수한 상태였다. 덕분에 우리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빵과 주스로 간단히 요기를 하며 일출을 즐긴 후, 재빨리 쉘터를 접었다. 하산을 시작하자 마자 사람들이 물밀 듯 밀려 올라왔다. 올해 봄 꽃 헌팅은 수확이 좋았다.
※ 이럴 땐 이렇게
비화식으로 푸짐하게 밤을 보내는 방법
비화식으로 푸짐하게 밤을 보내는 방법
1 캠핑할 때 잘 챙겨먹으려면 무엇보다 배낭을 잘 싸야 한다. 큰 배낭이면 좋지만, 널찍한 배낭 공간에 짐을 마구 넣으면 무게 때문에 오히려 배낭에 잡혀 먹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김정미와 김효주는 미스터리랜치 멧카프(71L)로, 나는 미스터리랜치 브릿저(65L) 배낭을 챙겼다.
2 비화식은 산에서 먹기에 간단하고 편하다. 하지만 떠나기 전 준비할 게 많다. 우리는 이번에 과카몰리 카나페와 카프레제를 먹었다.
2 비화식은 산에서 먹기에 간단하고 편하다. 하지만 떠나기 전 준비할 게 많다. 우리는 이번에 과카몰리 카나페와 카프레제를 먹었다.
과카몰리 카나페
재료 : 잘 익은 아보카도 1개(딱딱한 아보카도는 2~3일 후숙시켜야 함), 양파 1/2개, 토마토 1개, 후추, 소금 약간, 레몬즙, 크래커
만드는 방법 : 토마토와 양파는 잘게 다져준다. 잘익은 아보카도는 숟가락으로 으깨 준다. 잘게 다진 토마토와 양파를 으깬 아보카도에 넣고, 후추, 소금, 레몬즙을 넣고 섞어 준다. 크래커 위에 한입 크기로 얹으면 간단한 핑거푸드 완성!
카프레제
재료 :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발사믹 소스.
만드는 방법 :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를 5~10mm 두께로 잘라 하나씩 번갈아가며 비스듬히 쌓는다. 발사믹 소스를 뿌리면 와인 안주 완성!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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