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非트로트 이질적 실험..그럼에도 편안하다

박세희 기자 2022. 5. 3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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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의 첫 정규 앨범 ‘IM HERO’는 발라드와 트로트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담고 있다. 물고기뮤직 제공
임영웅 1집 ‘IM HERO’의 트랙리스트. 물고기뮤직 제공

음악평론가 김영대의 팝·콘 - 임영웅 ‘IM HERO’

장르·편곡 다채롭게 선보이면서

보편적 사운드 ‘이지리스닝’ 추구

트렌디한 성인 취향의 음악 도전

새로운 ‘어덜트 컨템퍼러리’ 개척

고정된 틀 깬 올라운더 면모 과시

탐색전. 열두 곡으로 빼곡히 메워진 임영웅의 첫 정규 앨범 ‘IM HERO’를 들으며 즉각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다. 첫 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부터 마지막 곡인 “인생찬가”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똑같은 방향성으로 들리거나 읽히지 않도록 한 점만 봐도 그 의도가 분명해진다. 이제 막 리코딩 아티스트로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임영웅이 품은 음악적 호기심과 포부의 첫 결과물, 과연 이 탐색의 과정이 가리키는 궁극의 지향점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앨범을 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는 단순히 첫 곡일 뿐 아니라 이 앨범에서 가장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간, 그야말로 이 앨범의 승부수라 일컬어도 무리가 없을 곡이다. 이적이 가사와 곡을 써줬고, 정재일과 같은 발라드 최고수들의 손에 의해 마무리된, 큰 스케일과 쉽지 않은 디테일이 많아 어려운 노래다. “다행이다”로 대표되는 이적의 곡들이 종종 그렇듯 어른스러운 이야기와 감정을 담뿍 담은 곡이고, 그런 점에서 적힌 이름들의 조합만을 보고 소위 ‘성인가요’에 적합한 감수성을 가진 임영웅에게 최적화된 곡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결과는 예상외의 어울림이다. 임영웅의 비브라토나 음처리는 완전히 팝 발라드 장르에 최적화되지 않은, 그렇다고 트로트적인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어느 지점에 수렴돼 독특한 느낌을 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소 이질적인 어울림이기도 하지만 웅장하게 고조되는 곡의 구조를 극도로 세련되지도, 그렇다고 촌스럽지도 않은 적당한 감정선으로 담백하게 포착해 내는 임영웅의 목소리는 익숙해질수록 돋보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합’이라고 느껴지진 않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려는 임영웅의 치열한 노력이 더 잘 드러난 곡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단연 이 앨범의 가장 큰 도전이자 성취다.

이어지는 수록곡 “무지개”는 타이틀곡의 묵직함과는 다른 가벼움을 앞세우면서도 앨범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무리 없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곡이다. ‘평범해도 좋으니까 함께 가요’라는 가사 한 구절이 이 노래의 모든 것을 잘 대변해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곡은 도드라지기 쉽지 않은, 가수 입장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곡이 될 수 있다. 감동을 자아낼 드라마틱한 구성도, 가수의 호소력을 드러낼 고음역대의 멜로디도, 특별히 반전의 모멘텀도 없는 이 ‘평범한’ 곡은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게 들릴까? 아마도 그 대답은 이 소박한 메시지와 매력을 무리 없이 전하는 데 최적화된 임영웅의 보컬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편안하고 즐거운 음악들이 주를 이루는 이 앨범에 ‘실험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어색하다. 하지만 예상외의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중에서도 레게 비트 위에 오토튠된 임영웅의 목소리가 흐르는 라틴 힙합 “A bientot”는 분명 쉽게 생각지 못한 ‘일탈’이다. 물론 그 충격은 음악이 아닌 노래의 주체가 임영웅이라는 사실 때문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허스키한 톤으로 쏟아내는 그의 싱잉랩과 보컬에서 특별히 어떤 어색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대중음악에서 ‘도전’과 ‘무리수’는 늘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곤 하지만 이 곡은 그 함정을 어느 정도 피해가며 퍽 유쾌하게 마무리됐다.

앨범의 전반부가 변신과 도전의 의중을 강하게 내비쳤다면 후반부는 그에게 가장 ‘검증된’ 카드들을 위해 마련돼 있다. “보금자리”와 “사랑역” 같은 트로트 곡들이 그에 해당하는데, 앨범의 뒷부분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이 곡들이 가진 ‘보험용’으로서의 성격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트로트의 황제 자리를 넘겨받은 그가 트로트로 얼마나 더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지만 정작 곡들이 흘러나오면서 이런 의문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즉시 깨닫고야 만다. “보금자리”의 달려나가는 리듬에서도,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랑역”의 로맨틱한 분위기에서도 임영웅은 자연스럽게 곡들을 밀고 당기며 듣는 이들의 기대감을 무리 없이 충족시켜준다.

이쯤에서 이 앨범의 성격과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두왑(doo-wop) 스타일의 발라드 “손이 참 곱던 그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앨범에서 개별적인 장르는 임영웅의 전방위적 보컬과 다채로운 매력을 드러내는 방편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IM HERO’의 모든 수록곡은 트로트든 비트로트든, 트렌디한 곡이든 복고풍의 곡이든 상관없이 듣기 편하고 보편적인 사운드, 즉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들이라는 점에서 그 기조가 큰 틀에서 일치하고 있다. 장르와 편곡을 최대한 다채롭게 가져가며 지루함의 여지를 없애고 있다는 점에서는 장르가수보다는 ‘K-팝’적인 접근법이라 말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가장 확실한 차별화의 근거이자 셀링포인트인 임영웅이라는 ‘아이돌’이 있다.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진 오늘이다. 과연 누가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감수성을 대변하고 대중에게서 폭넓은 지지를 얻어내는 가수일 것인가? 아니, 정말 그런 가수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임영웅의 ‘IM HERO’가 혹시 그 대답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어째 확실한 대답 대신 또 다른 질문들을 얻은 것 같다. 그는 어떤 장르의 가수일까? 그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직은 또렷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이 같은 궁금증과 모호함이 꼭 부정적일 이유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단순히 트로트를 넘어 성인 취향의 트렌디한 대중음악, 그러니까 ‘어덜트 컨템퍼러리’ 장르를 그만의 방식으로 도전하고 싶었다는 것이며, ‘IM HERO’는 그 의도를 제법 솜씨 있고 다채롭게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 김영대 =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BTS : 더 리뷰’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 등을 집필했으며 국내외 언론을 통해 대중음악 평론 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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