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독립운동가'에 안경근·이덕주·최흥식..한인애국단 활약

정충신 기자 2022. 5. 3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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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한인애국단에서 활약한 안경근·이덕주·최흥식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한인애국단은 일본군 주요 인물을 처단하기 위해 1931년 김구 선생 주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결성된 단체다.

정부는 안경근 선생에게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이덕주 선생과 최흥식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1990년, 1991년 추서해 공훈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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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안경근 선생. 안중근 의사 사촌이다. 국가보훈처 제공
6월의 6·25전쟁영웅에 선정된 최용덕 공군참모총장. 국가보훈처 제공

의열단 출신 최용덕 공군참모총장 ‘6월의 6·25전쟁영웅’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한인애국단에서 활약한 안경근·이덕주·최흥식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한인애국단은 일본군 주요 인물을 처단하기 위해 1931년 김구 선생 주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결성된 단체다. 안경근 선생은 안중근 선생 사촌으로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1918년 국내에 가족을 모두 남겨둔 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안 선생은 운남강무학교 졸업 이후 황포군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한인애국단에서는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김구 선생 신변 보호를 맡았다.

이덕주 선생은 1932년 3월 조선 총독을 처단하라는 김구 선생 지령을 받고 황해도 신천에서 의거를 준비하다가 경찰에 체포됐고 그해 7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최흥식 선생은 1932년 5월 중국 다롄에서 관동군 사령관과 남만주철도 총재를 처단하려다가 준비 과정에서 붙잡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안경근 선생에게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이덕주 선생과 최흥식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1990년, 1991년 추서해 공훈을 기렸다. 보훈처는 “이들 세 분의 선생은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특수정보를 수집해 의열투쟁을 지원했고 본인의 안위보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신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보훈처는 ‘6월의 6·25 전쟁영웅’에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최용덕 공군 중장을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최 중장은 6·25전쟁 당시 공군사관학교장으로 재직하며 김포기지 방어를 위해 김포지구 경비사령부를 편성해 적군과 대치했고 항공기지사령관·작전참모부장 임무를 수행하고 공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해 휴전될 때까지 작전을 지휘했다. 최 중장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했고 1916년 중국 육군군관학교 입교 이후 중국군 초급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군에서 나와 의열단에 가입해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이후 광복군 총무처장과 참모처장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후 귀국해 공군 창설에 헌신했으며 6·25전쟁에서도 활약했다. 1953년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1956년 예편 이후 체신부 장관과 중화민국 대사를 지냈으며 1969년 광복절에 영면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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