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제 2의 트리마제 될라"..심각해지는 둔촌주공 사태

오세성 2022. 5. 3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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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재로 조합-시공단 만났지만..입장 확인 그쳐
갈등 장기화하며 타워크레인 임대도 만료..철거 본격화
"트리마제 사태 재현 가능하다" 높아진 우려
"기업의 사회적 책임..최악의 상황 피할 것"
공사가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사진=뉴스1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공사 중단이 장기화하자 일각에서는 사업 파행이 거듭하면 2007년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3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시의 중재로 협의를 가졌다. 조합에서는 김현철 조합장과 임원 등이 참석했고 시공사업단은 4개 건설사 현장대리인과 사업소장이 참석했다. 지난 4월 15일 공사 중단 이후 첫 만남이었지만, 양측은 그간의 입장 차이를 재확인하는 데 그치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 규모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는 사업이다. 하지만 공사비 증액을 두고 조합이 소송을 제기하는 등 마찰이 지속되면서 지난 4월 공정률 52%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현재는 시공사업단이 사업 현장을 폐쇄하고 유치권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타워크레인 철거 본격화…협상도 평행선

이날로 사업 현장의 타워크레인 대여 기간도 만료되면서 철거가 본격화할 예정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에는 57대의 타워크레인이 설치되어 있다. 일부 업체들이 일찌감치 철거 사전 작업을 진행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오는 7월 말이면 타워크레인이 모두 해체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공사업단이 사업비 대출 보증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표한 데 이어 조합과의 갈등도 해결될 징조가 보이지 않자 일각에서는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트리마제 사태'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최악의 최악을 거듭하면 가능성이 있다"며 "건설사 입장에서 돈만 따지면 그렇게(제2의 트리마제 사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바라본 서울숲 트리마제 모습. 사진=한경DB


성수동 트리마제는 지역주택조합이던 성수1지역주택조합이 두산중공업을 시공사로 선정해 추진하는 사업이었다. 중도에 분담금과 분양가 등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 사이 갈등이 빚어졌고, 사업이 지연되며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조합이 부도났다. 사업 부지는 경매에 부쳐졌고, 두산중공업이 인수해 최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불리는 트리마제를 완공했다. 다만 조합원들은 사업 부지와 분양 권리를 박탈당했다.

지역주택조합과 재건축조합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공사 이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둔촌주공 역시 공사비와 분담금 등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갈등을 빚어 사업이 지연된 상태다. 각각 오는 7월과 8월로 예정된 이주비·사업비 대출 만기를 연장하지 못하면 조합이 감당하기 어려운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도 닮았다.

시공사업단은 사업비 7000억원 대출이 연장되지 않고 8월 만기를 맞으면 대위변제 후 조합에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대출 연장이 무산되면 약 6100명인 둔촌주공 조합원 1인당 약 1억2000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개별 조합원이 아닌 조합이 상환의 주체가 되기에 일부 조합원이 갹출을 거부하면 사업비 상환이 어려워진다.

사업비 전액 상환에 실패하면 트리마제와 마찬가지로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부지 역시 경매에 넘어갈 수 있다. 이 경우 사업 부지를 담보로 삼은 이주비 1조4000억원도 함께 상환해야 한다. 62만6232㎡에 달하는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부지는 ㎡당 2020만원으로 감정평가를 받은 바 있다. 전체 부지 감정가는 12조6498억8640만원이 된다. 사업비와 이주비 2조1000억원의 6배가 넘는 액수다.

 조합-시공사 갈등에 금융비용 부담까지…트리마제 '닮은 꼴'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유치권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사진=뉴스1


그런데도 둔촌주공 조합원들이 맨손으로 쫓겨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원인은 법원 경매에 최저경매가 하한선이나 유찰 횟수에 대한 제한이 없다는 점에 있다. 우선, 여의도 면적 5분의 1에 달하는 둔촌주공 사업 부지가 통째로 경매에 부쳐지면 입찰자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공정률이 50%를 넘었고 시공사업단이 공사비 1조7000억원에 대한 유치권 행사에 나섰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경매가 유찰을 거듭하면 사업 부지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 법원 경매는 유찰마다 최저경매가가 20~30% 차감되기 때문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도 4곳이 분담했을 정도로 규모가 큰 부지"라며 "주인을 찾기 쉽지 않아 만약 경매로 넘어간다면 여러 차례 유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이 7월로 예정됐던 정기 합동점검 일정을 앞당겨 이달 23일부터 내달 3일까지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것에도 8월 사업비 대출 만기 도래 전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원론적으로는 과거 트리마제 상황의 재현이 가능한 상태"라며 "일각에서 분양가상한제 완화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현 상황의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빠르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업계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시공사업단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시공단은 6000여 조합원이 모두 집을 잃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공사업단의 입장은 (유치권 행사에 나선) 공사비 등의 비용만 회수하면 된다는 것"이라며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합 관계자도 "서울시가 중재를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향후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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