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김양희 "한미정상회담 윈윈..韓, 주춤하면 글로벌 미아"
韓반도체 경쟁력 美에서 비롯된 것
한중관계 관리하며 세계무역 질서 재편에 적극 참여해야
24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만난 김양희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은 지난 21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이 일방적인 미국 퍼주기가 되고 말았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삼성전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 평택 공장과 비슷한 반도체 위탁공장을 미국 텍사스에 170억달러를 투자해 짓겠다고 발표했다. 또 현대차는 앞서 발표한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건설 등을 위한 55억달러 투자와는 별도로 로보틱스에 50억달러를 더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의 한국 투자는 발표되지 않았다.
김 부장은 이에 대해 “이제 중국이 만드는 배터리는 미국에서 설 땅이 없어진다”며 “그 시장을 우리가 선점해야 하는데 미국이 앞장서서 길을 만들어주는 만큼, 기본적으로 윈윈(win-win)”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향후 우리나라가 산업경쟁력을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의 스텝을 맞추는 것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제조 강국이지만, 그 원천기술과 장비는 여전히 미국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 그는 “우리가 아직 경쟁력이 부족한 핵심기술, 신흥기술, 우주 분야까지 협력의 지평이 확장된다고 하는 것을 결코 ‘퍼주기’라고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김 부장은 현재 세계질서가 얼마나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지 강조했다. 십수년간 우리가 성장해왔던 자유무역은 완전히 퇴조되고 신뢰할 수 있는 나라·기업들과 새로운 규칙과 규범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미국의 보호주의 진영화 전략이 투사된 공급망 재편전략을 신뢰가치사슬(Trust Value Chain·TVC)이라고 불렀다. 중국이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들어간 이유다.
김 부장은 “미국 주도로 새 판 짜기가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원천기술, 핵심기술을 얻을 곳이 없다”며 “중국이 그걸 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관계를 긴밀히 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가 있지만 이를 상쇄, 혹은 뛰어넘는 이익이 있다면 거기로 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지금 주춤하면 글로벌 미아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부장과의 인터뷰 전문.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양국의 협력공간을 한반도를 벗어나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하고 협력분야도 더욱 확대했다.
한반도 일대는 공통된 지역명이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곳이다. 때로는 동아시아, 때로는 아시아태평양, 때로는 인도태평양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지역명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지정학적 시각이 투사돼 버리는 지역이다. 중국이 여전히 동북아시아라는 호칭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이 인도와 호주, 동남아시아, 태평양을 묶는 인태 전략을 추진한다는 것은 명실상부하게 미국을 역외국이 아닌 역내국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나아가 미국 주도 인태 전략에 함께 하겠다는 의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자면.
△일단은 한미 동맹이 한국의 안보 기반이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갈수록 전세계의 안보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그 부분을 확실하게 미국이 보장했다는 점은 분명한 실익이다.
아울러 작년에 이미 새로운 단계로 올라섰지만, 한미동맹이 한반도 내 양자동맹만이 아닌 글로벌 포괄적 동맹으로서 발전하고 있다는 구체적 내용을 확인했다. 경제, 사회, 문화, 환경, 우주 등 그야말로 광범화한 범위에 걸쳐서 양국이 좀 더 굳건하게 협력할 수 있는 필요성,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은 우리로선 나쁘지 않다.
- 일각에서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퍼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리가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우리만 퍼준다고 보는 것은 너무 일차원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이 우리를 턱밑까지 쫓아온 상황에서 우리 힘으로 중국과의 경쟁력 차이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우리가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견제해주는 반사이익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또 우리만 반도체 영역에서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역시 ‘난센스’다. 사실 반도체의 원천기술은 미국에 있으며 장비 역시 미국이 주지 않으면 우리는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한국이 강한 것은 메모리 반도체 역량이며 나머지 영역에서는 미국이 앞서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배터리 역시 마찬가지다. 점차 중국이 만드는 배터리는 미국에서 설 땅이 없어진다. 중국이 빠진 시장을 우리가 선점하는 차원인데, 우리가 하지 않으면 어차피 다른 나라가 할 것이다. 미국이 앞장서 길을 터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경제적인 면에서 봤을 때 기본적으로 윈윈이다.
또 우리가 아직 경쟁력이 떨어지는 핵심기술, 신흥기술, 우주 분야까지도 협력의 지평이 확대된다라고 하는 것은 결코 우리 입장에서는 퍼주기라고 볼 수 없다.
미국이 원천기술, 핵심기술, 차세대기술은 가지고 있지만 중국 시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관계가 과도하게 갈등을 빚을 우려는 이전보다 커진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잘 풀어나가느냐가 한미 관계를 어떻게 잘 풀어나가느냐 못지않게 상당히 중요하다.
다만 이제는 우리 시각이 아닌 미국 시각, 글로벌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 경제적으로만 경쟁자가 아닌, 전략적으로도 대립 관계이고 가치·이념면에서도 함께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점점 분명하고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은 인태 전략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서양에는 미국-유럽연합(EU) 무역기술 위원회(TTC)라는 것이 있다. TTC에서도 IPEF와 비슷하게 수출통제, 디지털경제, 공급망, 노동, 환경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IPEF는 IPEF로만 끝나는 게 아니고 쿼드나 TTC와 연결될 것이다. 이렇게 미국 주도로 글로벌 규범과 표준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것도 우리가 IPEF에 들어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지금 미국은 이중용도로 활용 가능한 핵심 전략 물자는 기존의 글로벌가치사슬(GVC)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신뢰할만한 나라들과 다시 공급망을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나는 이를 ‘신뢰가치사슬’(TVC)라고 부르는데 지금 미국은 이것을 2중, 3중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의 반발이 우려돼 미국에 경도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이 논의에서 빠진다면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원천기술, 핵심기술을 얻을 데가 없다. 미국, EU, 일본 등이 다 빠지고 나면 중국이 이를 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이들이 아직 WTO에서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신흥 무역규범을 선제적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규범과 표준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하고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면서 물론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있겠지만, 그 비용을 상쇄하는 이익이 있다면, 그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쪽으로 가는 것이다. 모든 걸 다 얻을 수는 없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전략을 봤을 때, 지금 여기서 우리가 주춤하면 우리는 글로벌 미아가 된다.
- 그래서 그런가 IPEF 참가국이 예상보다 많았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빠진 인도가 IPEF가 참여한 함의가 크다. 아세안의 주요국이 거의 모두 들어갔다. 중국으로서는 심기가 불편할 것.
- 대만이 안 들어간 것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대만이 들어갔다면 너무 과하게 중국을 자극하는 게 된다. 거기까지는 미국이 도발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 IPEF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는 여전하다
△IPEF 약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이게 행정협정이기 때문에 국제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바이든 정권이 바뀌고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온다면 백지화될 수 있다. 지금 IPEF의 첫 번째 주제인 ‘공정하고 회복력이 있는 무역’에서만이라도 국제법적인 구속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실제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두 번째는 시장접근이 보장되지 않는 협정이기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참가를 꺼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빼고 아세안 모든 국가들이 IPEF에 참여했다. 특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주요국들이 들어왔다. 이들도 여러 셈법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역내에서 새로운 경제질서가 태동하는 중요한 시점에 일단 그 흐름에 타고 보자는 생각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IPEF가 미국만을 위한 협정이 아닌, 어떤 형태로든 상호호혜적인 게임의 룰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기존 자유무역 질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게임의 룰을 논의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나라들이 모인 것이고, 이제부터 구체적 내용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 미국이 주도한 면은 있지만, 새로운 글로벌 질서를 논의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데에서는 대다수의 국가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인도를 포함해 IPEF에 참여한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중국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것. 따라서 중국의 불공정행위, 경제의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크고 이를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 사실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RCEP이 있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이 있고, 여기에 IPEF까지 생겨버리면 같은 조항에 서로 다른 내용을 담으며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반면 RCEP의 개방 수준이 워낙 낮기 때문에 서로 상호보완되는 측면이 있다.
그럼 RCEP는 앞으로 소용이 없어지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RCEP의 가장 큰 장점은 원산지 규정 단일화다. 20년 정도 지나면 RCEP에 있는 나라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무역활동을 할 수 있다.
또 RCEP에만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중국. 한계는 있지만, 중국을 국제법에 기반해 15분의 1로 상대화시킬 수 있는 지역 거버넌스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RCEP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박진 외교부 장관은 중국이 규범과 질서에 참여하도록 한국이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은 앞으로 미국과의 어떤 전략 경쟁에서 단순히 군사력, 경제력만이 아니라 소프트파워면에서도 사실은 뭔가 매력적인 나라여야 한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든다고 상대방에게 그렇게 경제 보복을 무자비하게 가할 수 있는 나라에 대한 국제무대의 평가, 인상은 결코 좋을 수 없다.
한국이 IPEF에 들어갈 것이라고 해서 중국이 보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IPEF의 최종 성과물이 무엇이 될지 지켜봐야 한다. 이것은 중국을 겨냥한다기보다 뜻맞는 나라들끼리 글로벌 규범과 표준 제정, 협력을 추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더욱이 IPEF 참가는 경제 실익을 위한 우리의 주권행위인데다가 우리만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한국만 콕 집어서 보복을 한다는 것은 중국이 그것을 통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크다고 보기 때문에 중국이 소탐대실하지 않으리라 본다.
정다슬 (yam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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