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30] 통제를 상실한 테크놀로지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2. 5. 3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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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사이보그 W1-W4, 1998, 실리콘 캐스팅, 폴리우레탄, 페인트. 아트선재센터 소장. /ⓒ이불, 사진: 윤형문, 이불 작가 제공.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이불(李昢·1964~)은 1980년대 말, 억압적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갈등을 도발적인 퍼포먼스로 풀어내 한국 미술계에 충격을 던지며 등장했다. 이후 이불에게는 ‘여전사’라는 말이 줄기차게 따라다녔다. ‘여전사’에는 여자치고는 공격적이고, 전사치고는 만만하다는 뜻이 숨어있으니 누구라도 그리 달가울 리 없는 칭호다.

‘사이보그 W1-W4′는 이불이 내놓은 여전사다. 우주 전쟁의 시대가 오면 이처럼 인간과 병기가 완벽하게 결합된 사이보그가 인류를 대신해 전장에 나설지도 모른다. 따라서 재료도 완벽한 몸을 보장하는 성형 의학의 소재 실리콘이다. 이들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여신상처럼 순백색에 팔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온몸에 장착한 갑옷과 기기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흔히 등장하는 미소녀 전투 로봇처럼 풍만한 상체와 잘록한 허리를 과장해 육감적인 몸매를 강조한다. 이처럼 고전과 첨단, 미술과 대중문화, 미와 불완전함이 매혹적으로 뒤섞인 사이보그를 두고 작가는 ‘테크놀로지의 완벽성에 대한 신화에 의문을 던지는 불완전한 몸’이라고 설명했다. 전투 로봇에 전형적인 여성의 몸을 덧붙인 대중문화의 상상력 안에는 첨단 기술이 반드시 인간의 명령에 순순히 복종하길 바라는 기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서려있었을 것이다.

사이보그들이 창백한 조명을 받으며 미술관 천장에 매달려 있으면, 격렬한 전투 끝에 인류가 절멸하고 다만 고요 속을 떠다니는 기계의 파편만 남은 머나먼 미래에 대한 암울한 상상을 하게 된다. 이불은 이처럼 통제를 상실한 테크놀로지와 예측을 벗어난 과학적 성과가 몰고 올 가공할 디스토피아를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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