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 출산율, 韓의 2배인 이유

정시행 뉴욕 특파원 2022. 5. 3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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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한 여성이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고 있다./로이터

최근 미국 정부가 미 출산율이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발표했다. 2021년에 태어난 신생아가 366만여 명으로, 2020년 신생아보다 4만6000명 늘었다. 한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도 지난해 1.66명으로 전년도 1.64명보다 늘었다. 또 25세 이상 모든 연령대에서 출산율이 증가했다.

미국도 여느 고도의 산업국가들처럼 저출산을 걱정한다. 그러나 출산율 절대치로 보면 다른 선진국보다 낮은 편은 아니다. 국가 경제 규모 유지에 필요한 적정 출산율(1.84명)과 실제 출산율의 괴리가 가장 적은 나라에 속한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넘보지만 중국 출산율이 급락하면서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미국에 밀려 경제 역전에 실패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유엔은 2035~2040년 중국의 고령의존비율(근로 연령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미국을 추월한다고 전망한다.

한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 0.81명으로 세계 꼴찌였다. 출산율이 미국의 절반도 안 된다. 이 격차는 우리가 그간 저출산 극복에 쏟아부은 천문학적 예산과 행정 역량을 생각하면 더욱 뼈아프다. 미국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이 전무하다시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 연방 정부와 대부분 주 정부엔 출산 지원금도, 영아 수당도, 아동 수당도 없다. 국가 차원 출산휴가도 육아휴직제도 없다. 어린이집도 무상이 아니어서 보육비가 꽤 많이 들고 사교육 시장은 한국 뺨치게 비싸다. 지하철 임신부 전용 좌석도, 핑크색 주차 자리도 없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미국인들은 아이를 낳는다. 왜일까. 우선 일자리다. 여성들은 누가 분유 값·기저귀 값 준다고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양육비,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노후를 설계할 수 있는가 등 여러 거시 비용을 따진다. 한국에서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은 공무원과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면 경제 활동의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반면 미국 엄마들은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돈은 또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 키워놓고 언제든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남녀 임금 차별과 유리 천장이 있다지만, 대부분 직군에서 나이와 성별, 자녀 유무에 따라 노동시장 진입이 봉쇄되지는 않는다.

또 하나는 여성에 대한 성 역할 압박이 한국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미 여성들과 대화해보면 자녀를 낳을지, 몇 명 낳을지는 철저히 본인의 만족감과 역량을 기준으로 정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만약 “결혼 언제 하느냐” “애 안 낳느냐” “둘째도 낳아야지” 같은 한국식 ‘생애주기별 압박’을 받는다면 인권침해로 느낄 것이다. 여성을 출산 도구로 보고 “잘해줬는데 왜 불평하느냐”고 여성을 탓하는 사회에선 출산율이 회복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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