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 칼럼] 509인 무투표 당선자가 말해주는 것
지방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이미 약 20%의 유권자들이 지난주 사전투표에 참여하였으며, 내일 저녁이면 선거결과의 윤곽이 밝혀질 것이다. 이번 지방 선거가 한국 정치에 제기하는 문제점들은 이 지면을 통해 지난 두 달에 걸쳐 밝혔지만, 오늘은 이번 선거의 한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무투표 당선자들이 말해주는 바에 대해 토론하고자 한다.
지방선거는 시·도지사에서부터 시·군·구(청)장, 시·도 의회 및 구·시·군의회의 지역구 및 비례대표의원들에 더하여 교육감까지 총 7개의 선출직, 전국적으로는 4132명의 선출직을 뽑게 되는 대규모 ‘동시’ 선거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면 등록 후보자만 7500명이 넘는 선거인 것이다. 출마자들의 면면을 기억하기조차 버거운 선거이며, 출마자들을 소개하는 두꺼운 선거공보물이 유권자에게 부담스러운 선거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후보자 등록이 마감된 이후, 이 중 509명의 후보자가 무투표로 당선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4000여명을 선출하는데 12%를 상회하는 후보자들이 선거의 출발선에 서기 전에 이미 당선을 확정한 것이다. 선거별로 본다면 기초단체장 6명, 교육감 1명, 그리고 광역의회 약 100명, 기초의회 약 400명이 무투표 당선을 확정하였다. 이러한 무투표 당선의 규모는 유례없는 것이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투표 당선은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특히 ‘지역패권정당’이라고까지 불리는 지역적으로 확고한 기반을 지니고 있는 정당들이 존재하는 우리 정치의 풍토에서, 때로는 해당 정당의 후보자에 대한 도전이 거의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독출마가 비상식적인 현상은 아니다. 물론 예전 선거들을 생각한다면 제3당이나 무소속의 도전자들이 일당 우위 체제에 도전장을 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이러한 일당 우위체제에 대한 도전이 매우 심각할 정도로 후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영호남 지역은 270여명의 무투표 당선자를 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새롭게 나타난 흥미로운 현상 중의 하나는 2인 이상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초의회선거에서 서울·인천·경기 지역에서 180여석이 무투표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지역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수도권, 적어도 지역패권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수도권에서 무투표 당선자들이 이렇게 많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초의회의원 선거에서 2인 선거구의 경우 각 정당이 복수공천(1-가, 1-나, 2-가, 2-나 등의 기호를 부여하게 된다)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당이 1명씩만 ‘사이좋게’(1-가와 2-가만) 공천을 했기 때문이다. 양당이 복수 후보를 공천하게 된다면 결과의 불확실성뿐 아니라 표가 나눠질 것을 예상한 여타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들의 출마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양당이 확실한 1석씩을 확보하는 옵션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을 우리는 정당 간의 암묵적 담합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509인에 대한 가장 중요한 통계는 아마 이들의 소속 정당일 것이다. 정당공천이 없는 1명의 교육감 후보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508인은 모두 더불어민주당(282명)이나 국민의힘(226명) 소속 후보자들이다. 이들의 당선이 결정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우리가 투표를 행사하는 내일이 아니라 양대 정당이 이들을 공천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질문은, 과연 선거라는 국민의 심판대를 거쳐 내일 당선을 확정하게 될 ‘유투표 당선자’들이라고 해서 그렇게 다를까 하는 물음이다. 내일이면 결정될 대다수의 당선자들이 결국 빨간당과 파란당 옆에 붙는 숫자를 부풀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 또한 이미 확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양당의 패권적 공존질서가 공고해지는 한국정치의 근본적 문제점에 도달하게 된다. 양당의 공천을 받지 않으면 유의미한 후보자조차 될 수 없는 구조, 사소한 의제나 지역 현안도 양당의 인증을 받지 못하면 말할 수조차 없는 구조. 509명의 무투표 당선자들은 그 자체로서 문제가 아니라 보다 더 큰 문제의 일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정말 지방선거를 치렀던 것일까. 대통령의 취임, 그리고 뒤이은 양당 대립이 선거전략 그 자체였던 곳에서, 지역의 구체적인 절망과 고민은 소거된 채, 7장의 투표용지에 양자선택의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지방정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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