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칼럼] 차라리 지역구를 없애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2022. 5.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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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속부달(欲速不達).’ 제자 자하가 한 고을 장관이 된 뒤 찾아와 정치하는 법을 묻자 공자가 준 답이다. ‘어떤 일이고 급하게 서두르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는 뜻으로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서두르지 말라는 충고였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보고 있자니 이 말이 떠오른다. 대선 패배 후에는 자숙하며 와신상담하는 관행과 달리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패배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송영길의 지역구 인천 계양에 출마했다. 명분은 지방선거를 총지휘한다는 것이었지만, 여론조사들은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계받은 검사, 국정교과서 불법 추진으로 징계 대상이 된 자, 성추행 관련 인사조치자 등 이런 ‘문제인물’들만 모으기도 어려운 윤석열 정부의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헛발질과 혁신 부족으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텃밭으로 가볍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인천 계양까지도 박빙을 유지하고 있어 잘못하다가는 이 후보가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한 읍소처럼 이 후보의 “정치생명이 끝장”날 위기에 처해 있다. 여권에서 비판하듯이, 대장동 사건 등으로 ‘방탄’ 신분이 절실하게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정도와 거리가 먼 조기 출마 결정은 공자가 경고한 욕속부달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이 후보가 고전을 하고 있는 이유는 조기 출마도 문제지만 경기도지사와 대선 후보까지 한 거물 정치인이 전혀 연고가 없는, 그것도 험지가 아닌 손쉬운 ‘텃밭’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후보가 자신의 출마가 철새 논쟁으로 비화하자 인천이 원래 외지인이 사는 곳이라고 말하는 등 논쟁을 키웠다. 주목할 것은 이 후보만이 아니라 재·보궐선거는 으레 지역에 연고가 있고 오랫동안 생활해온 토박이가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공직을 갖지 못한 거물 정치인들을 낙하산 공천해 재생시키는 ‘재활원’ 구실을 해왔다는 점이다.

이 후보를 철새라고 맹비난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안철수 후보도 지역구였던 노원병을 버리고 김은혜 의원의 경기도지사 출마로 보궐선거를 치르는 판교에서 출마했다. 물론 안 후보가 만든 안랩이 판교에 있지만 이는 다른 이야기다. 사실 그는 정치 입문에서부터 ‘철새’였다. 진보정당운동의 상징이었던 고 노회찬 의원이 삼성X파일 폭로로 의원직을 상실하자 노 의원의 노원병과 부산 영도 등에서 보궐선거가 실시됐는데 안 후보는 고향인 부산에 출마하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혀 연고가 없는 노원병에 출마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재·보궐선거에 거물 정치인들이 연고가 없는 지역구에 철새로 날아오는 예는 끝이 없다. 우리가 사표 등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지역구제를 기본틀로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지역을 대표해 지역문제를 잘 풀라는 것이다. 철새 논쟁이 일어나자 이 후보는 ‘유능론’으로 대응했지만, 그가 아무리 유능해도 토박이보다 지역현안을 모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안과 명의가 “내가 명의니 대장암 환자 치료에도 유능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철새 논쟁을 넘어 근본적으로 지역구제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제 지방자치도 본격화되었으니, 국회의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대표’를 넘어 대한민국과 ‘국민’을, 아니면 계급계층, 젠더, 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을 대표하도록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철새 논쟁은 사라질 것이다. 스위스, 핀란드처럼 지역구를 없애고 전국 내지 호남, 영남 같은 권역별로 국회의원을 뽑는 순수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 흔히 선진국의 기준으로 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37개 나라 중 3분의 2가 넘는 25개 국가가 이 같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의 지역구제는 많은 사표를 만들어내고 국민이 행사하는 한 표가 똑같이 한 표로 평가받는 표의 등가성을 해쳐서, 헌법재판소가 표의 가치 차이가 2배 이상 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제도를 반쯤 따라가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입법정신을 짓밟은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설립으로 이들을 찍은 표와 정의당 등 군소정당을 찍은 표의 가치 차이는 오히려 7.9배로 벌어져 이 후보가 대선에서 위성정당 금지 등 개혁을 약속했다. 지역구를 없애면 철새, 사표 등 이 모두가 해결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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