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래 동량' 어린이들의 현재를 존중하시라
올해 어린이날은 유독 떠들썩했다. 어린이날이 제정 10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어린이날의 기원을 살폈다. 그러던 중 두 문장에 마음과 시선이 강력하게 붙들렸다. “어린이는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어린이를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자는 뜻을 담아 방정환 선생이 전한 말이다. 1년에 단 하루로는 부족하고 매일 상기하고 실천해야 할 말이 마땅했다.
세계 최초의 아동인권 선언문으로 일컬어지는 ‘어린이날 선언’ 발표 이후 한 세기가 흘렀고, 대한민국이 아동의 참여권을 강조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도 30년이 흘렀다. 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는 본인들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에 가닿고 있을까?
최근 월드비전은 새 정부에 아동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초등 4년~고교 3년생 904명을 대상으로 ‘아동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의 모습’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아동들은 본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서 소외되고 있고, 존중받지 못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시되었다. 설문 문항 중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제5, 6차 최종 견해에 기반해 우리 사회에서 아동으로 살아가며 가장 속상한 일을 물었을 때 ‘어른들은 우리 의견을 잘 듣지 않고 어른들 마음대로 결정한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13.7%로 입시 스트레스, 진로 고민, 놀이와 휴식 부족 다음으로 높은 순위의 아동권리 개선과제로 도출되었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아동 의견 존중’을 최우선 아동권리 개선과제로 꼽았다. 월드비전은 이러한 아동들의 목소리가 담긴 설문조사 결과를 새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달했다.
정부 또한 제2차 아동정책기본계획(2020~2024)을 통해 아동이 바라는 사회환경 조성을 위해 2023년까지 ‘아동 청원 플랫폼’을 운영하겠다는 계획과 각종 정책 결정 시 아동 참여를 제도화하여 사법 및 행정 절차상 아동 의견표명권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일 발표된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살펴봐도 아동과 관련한 과제는 ‘아동 돌봄과 성장 지원, 아동보호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아동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관점이 아쉽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라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이런 수식어가 아동의 현재를 존중하는 일은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너희는 우리의 미래야’라는 말에 앞서 100년 전의 당부를 상기하며 ‘여러분의 뜻을 가볍게 보지 않겠습니다. 어린이의 의견을 묻고, 듣고, 실현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을 먼저 하면 어떨까? 존중과 포용으로 충족된 아이들이 만들 미래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남상은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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