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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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가 추기경에 임명됐다.
선종한 김수환·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한국 천주교회 사상 네 번째 추기경이다.
한국인 성직자가 지역 교구장 출신 교황청 관료로서 추기경에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지닌 성직자 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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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추기경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권위를 내려놓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김수환 추기경의 족적 때문이다. 그는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하면서 교회 쇄신과 현실 참여 원칙을 제시했고 이후 시국 관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종교계가 나아갈 길을 밝혔다. 사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정부패로 썩어 가는데도 교회가 수수방관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여겼다. 1970∼80년대 군사정권의 엄혹한 시대에 양심의 목소리를 내면서 어른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봤다. 성탄절 전야에는 달동네 마당에서 미사를 보곤 했다. 서울대교구에 빈민사목위원회를 설치했고 추기경 재임 기간에만 150개 복지기관을 설립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현대 한국의 종교 지도자 중에서 김수환 추기경만큼 교파를 초월해 광범한 지지와 존경을 받은 분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에겐 엄격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며 자신의 사랑이 모자랐음을 부끄러워했다. 자화상 밑에 ‘바보야’라고 적어놓고 “안다고 나대고… 대접받길 바라고…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라고 했다. 선종한 뒤에는 각막을 기증해 시각장애인에게 새로운 빛을 주고 떠났다. 그가 머물던 혜화동 주교관에는 살아생전 남긴 붓글씨가 걸려 있었다. ‘눈은 마음의 등불’. 맑고 거룩한 영혼을 가진 바보가 들려준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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