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편가르기 거부한 남태평양 섬나라들

이종섭 기자 입력 2022. 5. 30. 22:18 수정 2022. 5. 30.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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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10개국 외교장관 회담서 새 '포괄적 다자 협정' 체결 실패
서방 견제에 미크로네시아 등 "종속·신냉전 우려" 부담 표출
중국·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30일(현지시간) 피지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윌리엄 카토니베레 피지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수바 | AP연합뉴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기 위해 남태평양 섬나라들과 안보·경제 협력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다자 협정을 체결하려던 중국의 시도가 일단 불발됐다. 남태평양이 미·중의 각축장으로 부각되는 것에 대해 일부 국가들이 부담감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30일 중국이 태평양 10개국과의 외교장관 회담에서 새로운 포괄적 협력 협정을 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6일부터 남태평양 8개국 순방에 나선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피지에서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통가, 바누아투 등 10개 섬나라 외교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중국·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 회의를 주재했다.

중국은 이날 회의에서 태평양 도서국들과의 안보·경제 협력 확대 방안을 담은 ‘포괄적 개발 비전’을 논의하고 이에 관한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었다.

개발 비전 초안에는 양측이 안보 협력 관계를 맺고 중국이 공안을 파견해 해당 국가의 경찰을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사이버 보안 문제 등 네트워크 협력을 강화하고, 각국과 정치적 관계를 확대하며, 해양 지도 작성과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남태평양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날 회의에서 태평양 도서국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미국과 호주 등 서방 동맹국이 중국의 행보를 견제한 데다 일부 국가가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이견을 표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왕 부장의 남태평양 순방 소식이 전해진 후 호주는 이 지역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피지에 외무장관을 급파했으며, 미국도 피지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가입 사실을 전하며 중국을 견제했다.

남태평양 국가들 중 몇 나라가 협정에 반대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AP통신은 미크로네시아가 이견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 대통령은 최근 다른 태평양 도서국 지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의 제안이 언뜻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남태평양 도서국을 종속시키고 최악에는 세계대전, 잘해야 신냉전 시대로 접어들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도서국도 남태평양이 미·중 갈등의 각축장으로 떠오르고 이 지역에 신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왕 부장은 이날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일부 국가와는 5개 협력 분야에 합의했으나 더 많은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지속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왕 부장은 또 “중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카리브해 개발도상국도 지원하고 있다”며 “중국과 다른 개발도상국의 공동 번영은 전 세계의 화합과 정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왕 부장이 언급한 5개 협력 분야에 안보 협력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자 협정 체결에는 실패했지만 왕 부장은 개별 국가들을 돌며 양자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왕 부장은 앞서 26일 솔로몬제도 방문에서 무관세 혜택 제공과 경찰력 구축 지원 등에 합의했으며, 27일 키리바시와는 일대일로 건설 및 방재·인프라·관광 분야 등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왕 부장의 키리바시 방문에서 주목받은 것은 중국이 지원하고 있는 칸톤섬의 활주로 개·보수 사업이다. 중국은 민수용이라고 밝혔지만, 미군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위치한 하와이에서 3000㎞ 떨어진 칸톤섬에 남태평양 거점을 확보해 미국과 호주에 대항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대만 군사학자인 창정밍(章榮明)은 지난해 5월 대만 국방안보연구원(INDSR)이 발간하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키리바시의 폐비행장을 개조해 미 태평양 함대를 감시하는 전략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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