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등불' 故 정동년 5·18재단 이사장의 발자취

김애린 2022. 5. 3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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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앵커]

5.18 당시 주동자로 지목돼 사형선고를 받았던 정동년 5.18 재단 이사장이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국교 정상화 반대 투쟁부터 시작해 바로 며칠 전까지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민주화를 위해 힘써온 고인의 발자취를 김애린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리포트]

1943년 광주 태생, 고 정동년 이사장 청춘은 민주화 운동과 함께였습니다.

196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맡은 뒤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를 하다 이듬해 구속되고, 학교에서 제적당했습니다.

이후 37살 만학도로 복학했지만, 5.18 당시 예비 검속으로 구속.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엮여 '광주사태 주동자'로 분류돼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82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부터는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힘썼습니다.

1988년 광주청문회에서 신군부의 고문을 폭로했고,

[정동년/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 :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본인의 무죄를 증명하거나 광주 시민들의 아픈 상처, 광주시민의 명예회복을 얘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광주시민들의 피맺힌 절규를 국민에게 전달하려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정보공개청구 소송으로 6년 만에 받아낸 12·12와 5.18의 검찰 수사기록은 진상 규명의 디딤돌이 됐습니다.

[정동년/2004년 : "군 작전일지, 전투항복, 군 지휘관 회의록, 이런 것들이 빠진 상태에서의 정보공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정동년 이사장은 사흘 전에도 금남로 무대에 섰습니다.

5.18 42주년 행사에서 죽음을 각오한 최후 항전으로 마침내 부활한 5.18과 산 사람들의 책임을 얘기했습니다.

[정동년/지난 27일 : "80년 5월의 시민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오늘날 80년 5월은 도래하는 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닙니다."]

장례위원회는 고인의 장례를 5.18민주국민장으로 치르기로 했습니다.

[박석무/상임장례위원장 : "참 허망하구나. 이제 좀 세상이 좋아지면서 대접받고 살아야 할 사람인데 가버린다. 너무 안타깝고 아쉽고..."]

정동년 이사장의 영결식은 내일 오전 5.18민주광장에서 거행되며, 유해는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됩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촬영기자:정현덕

김애린 기자 (thirst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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