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은 사회계약을 다시 맺는 일..집단적 학습·토론 필요"[MZ세대가 보는 연금개혁]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허남설 기자 2022. 5. 3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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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강지헌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무국장(33), 나현우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30),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31), 박나리 중앙대 사회복지학 박사과정(26), 서지은 프리랜서 노동자(30).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올 1월 ‘이대로 가다간 1990년생부턴 국민연금 한 푼도 못 받아’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많은 언론이 자료 제목을 그대로 따서 보도했다. 마치 기금이 떨어지면 연금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공포감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왔다. 사회공공연구원은 20대의 사적연금 가입 증가율이 2020년 16.8%에서 2021년 70.0%로 대폭 늘었다며 “ ‘기금고갈=연금파산’ 식의 공포 마케팅의 결과”라고 했다.

하지만 ‘공포 마케팅’에도 명분은 있다. 2018년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을 유지할 경우 2054~2057년쯤 재정이 고갈된다. 쌓인 재정이 없어도 해마다 필요한 연금액을 산정해 보험료를 걷고 급여를 내주면 되므로 못 받을 일은 없다. 다만 현재 9%인 보험료율이 3~4배로 오를 수 있다. 연금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MZ세대에게 부담이 과중되지 않도록 세대 공평한 연금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이 연금개혁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힌 MZ세대를 만났다. 강지헌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33·이하 강), 나현우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30·이하 나),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31·이하 문), 박나리씨(26·중앙대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이하 박), 서지은씨(30·가명·프리랜서 노동자, 이하 서) 등 청년 노동자와 활동가, 연구자 등 5명이 지난 25일 경향신문사에 모여 연금개혁을 주제로 토론했다. 이들은 언론과 정치권이 공포감만 조성하지 말고 연금에 대한 학습과 토론의 기회부터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또 향후 구성될 공적연금개혁위원회에 다양한 청년 그룹이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 내용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청년에게 국민연금이란

국가가 노후 보장? 신뢰 무너져
소득 등 생활 불안정한 청년에게
연금은 ‘가처분소득 뺏는 나쁜 제도’

- 청년들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인식하나.

강 = 당장 넣는 보험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대선 때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국민연금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관심도가 확 올라갔다. 그럼에도 일단 국민연금 제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똑같은 재정추계를 놓고도 해석이 다 다르다 보니 혼란스러워한다.

나 = 연금을 당장 받지는 못하고 근로소득에서 보험료만 나가다 보니 당장의 효능감이 떨어져 의무가입을 폐지하자는 말이 나온다. 최근 코인, 주식, 부동산 등 투기 관련 이슈가 많은데 사실 국가가 노후를 보장한다는 것에 대한 신뢰가 젊은 세대 내에선 이미 무너졌다. 오히려 당장 쓸 수 있는 돈을 확보하고 대출을 껴서 투자해 노후를 스스로 책임지는 게 불안정성이 덜하다고 본다.

문 = 청년에게 연금이 먼 미래의 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문제의 우선순위에 놓을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는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팩트(사실)가 아닌 것들로 공적으로 노후를 보장해야 한다는 데 대한 불신을 너무 많이 조장하고 있다.

박 = ‘받지도 못할 건데 왜 가입해야 해?’라는 거부감과 무관심, 분노가 모두 있다. 청년 개개인의 삶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단지 세금이라고 치부하는 경우도 많다. 연금개혁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도 구체적이지 않고 빈 껍데기만 있는 느낌을 받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나의 가처분소득을 빼앗는 나쁜 제도’라고만 인식하게 되고 언론도 그렇게 몰아가는 분위기다.

서 = 제가 바로 연금개혁에 대해 알아보다 포기한 1인이다. 애초에 연금을 받을 거란 생각도 해본 적 없다. 다만 돈을 낼 수만 있다면 국민연금에 내고 싶다. 내 삶의 최소한의 안전망으로서. 그런데 수입이 불규칙하고, 지역가입자라서 10%를 다 내는 데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 연금개혁은 왜 필요한가.

강 = 1990년대생부터 국민연금을 못 받는다는 건 전경련 등 재계의 프레임이라고 볼 문제가 아니다. 공적연금의 구조적 문제가 대단히 크다. 출생률 하락, 고령화, 기금 고갈은 예정된 사실이다. 부과방식으로 바꾸든 재정에서 충당하든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한다는 건 변함없다. 개혁을 미룰수록 문제는 악화된다. 나중에 보험료는 3~4배 더 내고 받는 돈은 똑같은데 누가 억울하지 않겠는가.

나 = 재정추계를 할 때마다 ‘기금이 언제 고갈된다’고 하면서 발등에 불을 떨어뜨린다. 공적연금의 지속 가능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 또 노인빈곤율이 높은 상황에서 보장성을 확보하는 문제, 비경제활동 인구와 납부예외자 등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문제가 있다. 학문적 해법은 다 나와 있고 정치적 해법을 고민할 때다.

전체 연금체계 바꿔야 하나

국민연금, 보험료율 등 조정 불가피
기초연금은 수급범위 좁히며 금액 상향
공적연금 틀 안에서 직역연금 통합

- 어떤 연금개혁이 필요한가.

문 = 국민연금은 잘 설계된 제도다. 다만 만든 지가 얼마 안 됐고, 그사이 인구·산업 구조가 갑작스럽게 변했다. 어느 누구도 당시엔 예측할 수 없었다. 국민연금을 변형해 노동자의 부담을 조정하는 건 가능할 거다. 하지만 인구구조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부담해야 될 총량이 어떻게 될지, 미래의 노인들이 존엄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어떤 부담을 져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박 = 노인이 되고 근로능력이 떨어졌을 때 국가가 보장을 해주지 않으면 독립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제도는 이런 이유에서 만들었는데, 소득대체율이 31.2%로 다른 선진국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고 그 결과 높은 노인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공적연금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서 = 프리랜서 노동자 입장에서는 사회안전망을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산재보험은 등급을 스스로 정해 보험료를 어느 정도 내겠다고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 국민연금도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저금액을 선택해서 그것만이라도 내도록 개선하면 어떨까. 또 직장가입자는 사업주와 4.5%씩 나눠내는데, 프리랜서 노동자 또한 사업주와 나눠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최근 예술인 고용보험이 의무화됐는데 국민연금 또한 사업주한테 강제해야 한다.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지난 25일 열린 ‘MZ세대가 보는 연금개혁’ 토론회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 전체 연금체계를 바꿔야 하나.

박 = 우리나라 연금 시장은 공적연금, 사적연금, 퇴직연금 등 세 파트가 각각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국민연금이 조금 더 가져올 수 있는 여력이 있다. 국민연금 재정건전성에 대해선 ‘공포 마케팅’이라고 할 정도로 과도하게 이야기하면서 조세로 충당하는 기초연금 재원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덜하다. 정치권이 표를 위한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2060년엔 노인 인구가 전체 40%에 달하는데, 지금처럼 이 중 70%에게 월 30만~50만원을 주면 재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공무원연금과의 통합은 단기적으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보험료율이 국민연금 9%, 공무원연금 18%로 2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문 =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모두 감당 가능한 수준 안에서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게 중요하다. 기초연금은 지급 범위를 확대하는 문제와 국가 혹은 지자체가 부담하는 재정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기초연금이 낮았기 때문에 인상해야 한다고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오른 상황에서는 더 올릴 것인지 신중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또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여러 사회보장제도들과의 관계성을 고려해야 한다.

강 =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건 당연히 중요한데, 그렇다면 보험료율을 어느 정도 올릴 것인지 실질적인 논의를 하는 게 첫 단계인 것 같다.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크레디트 제도(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 인정해주는 것) 등의 장점을 고려해 잘 조합하면 실질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다. 공적연금 구조를 개혁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은 소득대체율을 올리느냐, 보험료율을 올리느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체적인 공적연금 틀 안에서 직역연금을 통합하고, 기초연금도 올리다가 어느 수준이 되면 최저소득보장 연금으로 변경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나 = 당장은 모수개혁(큰 틀은 유지하되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의 핵심 변수 조정)이 필요하다. 기금 고갈 시기가 나와 있는데 어떤 조치도 이뤄진 게 없다. 적어도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가 선행되고 시간을 번 다음에 공적연금의 구조를 개혁하고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상황에서 시간만 흘려보내는 건 너무 아깝다. 앞으로 국민연금 수혜 인구가 늘어난다면 기초연금은 범위를 좁히면서 금액은 올리는 방식으로 노인빈곤 해소에 더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연금을 통합하는 문제에 대해선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기금 규모가 큰 국민연금과 합치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금개혁 성공하려면

‘기금고갈 = 연금파산’ 공포감 만연
사실 토대로 한 ‘공론장’ 마련하고
정부도 강력한 의지 보여줘야

- 연금개혁이 성공하려면.

강 = 제도에 대한 신뢰가 대단히 낮은 상태에서 개혁을 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사실관계부터 공유할 필요가 있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데이터를 나열해 주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제 반박할 수 없는 사실들을 놓고 입장을 정하고 토론을 해야 한다. 지금은 가장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다 다르게 보고 해석을 달리 하니까 초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나 = 연금개혁은 정치적인 작업이다. 세대 간 형평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세대 간 부양, 사회계약으로 봐야 한다. 이게 이미 인식적으로 다 해체됐다. 개혁은 사회계약을 다시 맺는 계기가 돼야 하고, 집단적 학습과 토론의 시간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선 2019~2020년 무작위로 시민 150명을 뽑아 탄소감축안을 논의하는 ‘기후시민회의’를 열었더니 정부보다 더 강한 감축안을 냈다고 한다.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여러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문 = 2015년부터 연금을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에 세 차례 참여했다. 항상 느낀 문제는 비공개이면서 숙의 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내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게 하고 논의해야 할 것들이 닫혀버리는 문제를 낳는다. 독일에선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면 토론회를 수백차례 열고 젊은층 참여를 위해 영화제 등 다양한 방식을 모색한다.

강 =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둘지 국회에 둘지를 보면 현 정부의 개혁 의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엔 연금개혁론에 대해 ‘용돈연금을 줄 것이냐’며 반박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엔 연금개혁을 강력하게 하면서 현 체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수지불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국민정서와 맞지 않다며 거부했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조금이라도 풀리는 문제인데 ‘공론장을 만들었다’며 공 넘기기만 할까봐 걱정된다.

박 =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금 문제를 토론하자고 하면 그냥 배우기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 연금제도나 사회보험이 교육과정에 들어가면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높이는 일이 될 것 같다.

나 = 윤석열 정부가 역사에 공을 세우고 싶다면 연금 문제를 푸는 것도 굉장한 공이 될 수 있다. 톱다운(하향식 의사결정)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성취한다면 큰 성과가 될 거다. 시민사회도 결합해 새로운 사회계약을 같이 만들어 가야 한다.

문 = 모두가 노인이 될 것이고, 노인이란 시기는 존엄이 위협받기 쉬운 때란 점을 주지해야 한다. 공적연금과 사적연금 중에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존엄을 해치는 풍토와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도 물려줄 것인지 선택하는 기로에 지금 서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김향미·허남설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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