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챙겨주는 자 복 있으라

한겨레 2022. 5.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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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박성훈의 브루더호프 이야기]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점심을 먹는데 메이플릿지 학교 5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클라이 선생님께서 앞으로 나와서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야기인즉슨 어제가 클라이 선생님 생일이라 반 아이들과 축하하기 위해 허드슨 강가에 스트라이퍼 낚시를 갔다고 합니다. 클라이 선생님은 낚시를 아주 좋아하십니다. 낚싯줄을 강가에 던지고 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낚싯대가 쭉 내려가기에 드디어 스트라이퍼가 걸렸구나 하고 모두들 좋아하고 있는데 낚싯줄에 달아 놓은 미끼인 청어가 갑자기 하늘 위로 올라가더랍니다. 모두들 하늘로 날아가는 청어를 보니 글쎄 이게 웬일입니까? 흰머리 독수리(Bald Eagle)가 청어를 물고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흰머리 독수리는 머리가 희어서 언뜻 보면 대머리가 같아 ‘볼드 이글’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하얀색을 뜻하는 옛 영어 단어인 ‘볼디(Balde)’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흰머리 독수리는 미국을 상징하는 새로 1940년 미 의회에서 모든 흰머리 독수리 사냥이나 매매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알, 새집 심지어는 깃털까지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멋진 흰머리 독수리가 코앞에서 청어를 움켜잡고 날아가는 모습을 미처 즐기기도 전에 흰머리 독수리를 잡게 생겼으니 정말 큰일 났습니다. 흰머리 독수리도 날아가는 것이 심상치 않았는지 한참 힘을 주더니 결국 청어에 걸린 낚싯줄이 끊겨 저 멀리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 프로그램에 나오는 한 장면 같네요. 아이들 모두 숨죽이며 이 광경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환호했습니다. 클라이 선생님의 멋진 생일 모험담으로 이렇게 스트라이퍼 낚시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브루더호프 제공
브루더호프 제공

“잡았니?” 아내가 조심스럽게 유빈이에게 물어봅니다.

“아니!” 얼굴에 골이 잔뜩 나서 유빈이가 대답합니다.

매해 5월이 되면 유빈이는 허드슨 강가에 가서 아빠와 형을 따라 스트라이퍼 물고기를 잡는 것을 도우면서 신이 났는데 이제는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어 옆에서 아빠, 형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낚싯대를 던지고 스트라이퍼가 미끼를 물면 스스로 낚싯대를 감아 올려 손맛을 즐기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사실 형보다 유빈이가 낚시를 아주 좋아해서 틈만 나면 공동체 안에 있는 연못에 가서 송어나 베스 등을 잡곤 합니다. 송어나 베스와는 달리 스트라이퍼를 잡으려면 적어도 반나절은 소비해야 하고 그렇다고 쉽사리 잡히는 것도 아니어서 하빈이는 이제 스트라이퍼 낚시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벌써 10년 넘게 스트라이퍼 낚시를 해서 그동안 할 만큼 해 충분하다 싶어 그만하고 싶은데 이제 고등학생이 된 유빈이는 평일이고, 주말이고 기회만 되면 스트라이퍼 낚시를 가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브루더호프 제공

유빈이 등쌀에 어쩔 수 없이 낚싯대와 온갖 장비를 챙겨 집을 나서 스트라이퍼 낚시를 간지 벌써 여섯번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집에서 기다리던 제 아내는 우리가 낚시를 하고 돌아오면 유빈이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마조마하게 물어보는데 매번 허탕이니 우리 모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스트라이퍼 시즌이 빨리 끝나든지 해야지 원!

옆집에 사는 크리스는 갈 때마다 스트라이퍼를 잡아 신이 나서 사진을 찍어 눈치 없이 유빈이에게 보여주니 옆에서 지켜보는 저는 한숨만 나옵니다. 크리스의 비법은 카누입니다. 크리스는 낚시를 갈 때마다 카누를 실어 나릅니다. 크리스 아들인 그렉이 낚싯대를 잡고 있고 크리스가 미끼가 달린 낚싯줄을 양동이에 담아 카누에 실어 깊은 강까지 노를 저어 가서는 그곳에 낚싯줄을 떨어뜨립니다. 스트라이퍼들이 강 깊은 곳 근처에 많이 몰려 있어 이렇게 하면 잡을 확률이 높아 크리스의 낚시는 성공하는 날이 많습니다.

브루더호프 제공

저도 그 비법을 알고는 있지만 카누를 나르는 것이 장난이 아닙니다. 낚시하는 곳까지 가려면 보통 10~20분을 언덕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낚시 장비만도 만만치 않은데 여기에 카누까지…. 이젠 힘이 달려 저로선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한번 낚시를 갔다 오면 지쳐버리는데 그나마 스트라이퍼를 잡으면 그 모든 피로가 다 씻기지만 벌써 여섯번이나 허탕이니 맥이 빠집니다. 이젠 제가 지쳐 유빈이한테 그만 접자고 하고 싶지만 너무 풀이 죽어 있는 아이를 보니 안쓰러워 이곳 청년에게 유빈이를 부탁했습니다.

낚시를 떠난 지 1시간도 안 되어 휴대전화로 사진이 전송되어 왔습니다. 유빈이가 스트라이퍼를 들고 있는 사진입니다. 내가 벌써 한 마리 잡았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벌써 네마리째랍니다. 기가 막혀…. 그러더니 사진이 계속 날라 오더니 그날 스트라이퍼를 10마리나 잡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초대박입니다. 아마도 그날 스트라이퍼 떼가 몰려온 것 같습니다. 아래 집 사는 갓 결혼한 형제도 유빈이를 데려가 그 날 두마리를 잡고 옆집 크리스네랑도 가서도 잡고…. 나랑 갈 때는 한 마리도 못 잡더니 유빈이의 스트라이퍼 무패 행진이 계속됩니다.

브루더호프 제공

유빈이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몇몇 학생들과 공동체 구석구석을 다니며 잔디를 깎는데 이번에는 잔디 깎는 팀과 함께 낚시를 갔습니다. 함께 잔디 깎는 데일은 얼마 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는데 스트라이퍼 낚시는 난생처음입니다. 데일 가족은 누가 제일 먼저 스트라이퍼를 잡을지 내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유빈이와 친한 말콤도 아빠가 새 관찰을 하는 것을 하도 좋아해서 생전 낚시를 하지 않는 집안이라 이번에 기대가 여간 큰 게 아니었는데 감사하게도 모두 한마리씩 잡았습니다. 이 아이들이 없으면 공동체가 어떻게 될까 싶을 정도로 평소 수고하는 것이 너무 컸는데 아이들이 스트라이퍼 한마리씩 들고 웃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기쁘고 흐뭇합니다.

유빈이의 놀라운 선전에 힘입어 나도 다시 한번 스트라이퍼 도전에 임했습니다. 낚싯대가 쭉 내려가자 유빈이가 먼저 낚싯줄을 감습니다. 한 5분쯤 감아올리는데 이번에는 다른 낚싯대가 쭉 내려갑니다. 유빈이를 도울 새도 없이 내가 낚싯대 줄을 감아올립니다. 유빈이가 한 10분쯤 낚싯대를 감아올리자 스트라이퍼가 보이는데 아빠가 자기를 도와 스트라이퍼를 퍼 올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스트라이퍼를 끌고 옵니다. 그사이 나도 열심히 낚싯줄을 감아 올려 마지막엔 유빈이가 도와 스트라이퍼를 강가로 끌어 올렸습니다. 이렇게 동시에 잡아 보긴 또 처음이네요. 아무튼 기분이 좋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 낚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다른 공동체에 사는 하빈이도 오랜만에 함께 낚시를 가 1m가 되는 큰놈을 잡았네요. 참 운수 좋은 해입니다.

브루더호프 제공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번 스트라이퍼의 낚시의 하이라이트는 르우벤 가족과의 낚시입니다. 르우벤과 애벌린은 7년 전 우리가 4개월간 뉴저지에 미션을 갔을 때 하빈이와 유빈이를 돌보아 주었던 가족입니다. 두 사람 덕분에 우리는 아이들 걱정 없이 교회에서 맡겨진 미션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르우벤 가족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이번에 르우벤 가족이 주말에 허드슨 강가에 있는 산장에 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는 산이나 강가에 조그만 집을 마련해 공동체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주말에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이번에는 르우벤 가족 차례가 된 것입니다. 보통 이렇게 휴가를 가면 자기 형제나 부모를 불러 식사하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르우벤이 우리 가족을 초대한 것입니다. 르우벤의 친형도 우리 공동체에 있고 다른 형제들도 주변 공동체에 많이 살고 있는데도 자기 형제가 아닌 우리를 초대하다니 눈물 나게 고맙습니다. 르우벤에게는 조그마한 아이들이 세명이 있는데 모두 참 귀엽습니다. 르우벤은 스트라이퍼를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어 유빈이가 아침 일찍부터 가서 미끼로 쓸 청어를 잡고 잡은 청어를 낚싯줄에 끼어 카누를 타고 강가 깊은 곳으로 가 낚싯줄을 떨어뜨리고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르우벤과 하빈이가 낚싯줄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 부부는 애벌린이 준비한 맛있는 간식을 먹고 있는데 르우벤의 막내인 꼬마 오스카가 달려와서는 아빠가 지금 물고기를 잡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들 뛰어나가서 보니 르우벤이 끙끙거리며 낚싯줄을 감고 있습니다. 한 20분쯤 낚싯줄을 감아올리니 드디어 놈의 정체가 보입니다. 유빈이가 뜰채로 잽싸게 들어 올렸더니 세상에나…. 47인치 (118㎝)나 되는 엄청나게 큰 스트라이퍼입니다. 이렇게 큰놈은 처음 봅니다. 막내 오스카보다도 키가 더 큽니다. 메이플릿지 공동체 레코드를 깼습니다. 모두들 환호를 지르고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모두 르우벤 가족이 자기 가족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사랑하고 챙겨줘서 복 받은 거라고 함께 기뻐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기념사진을 찍고 스트라이퍼는 다시 강으로 돌려 보내 줬습니다.

브루더호프 제공

스트라이퍼를 잡는 규정은 매년 달라지고 있는데 어떤 해에는 큰 것만 잡을 수 있는 해도 있고 올해는 스트라이퍼를 보호하기 위해 주로 알을 낳는 큰놈들은 잡아도 놓아 주어야 합니다. 올해 잡은 것은 큰놈들이 많아 대부분 다시 강으로 돌려 보내 주었습니다. 뭐 먹어야만 맛인가요? 잡는 손맛이 더 크지요. 감사하게도 처음 스트라이퍼를 잡은 르우벤 가족이 스트라이퍼 고기를 맛볼 수 있도록 그 이후에도 작은 것 2마리나 더 잡아 드디어 르우벤 가족도 스트라이퍼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르우벤 가족을 보면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게 된다는 마가복음 말씀이 떠올라 참 감사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스트라이퍼 낚시를 시도하면서 초반에는 한 마리도 못 잡던 유빈이가 이번 시즌에만 혼자 잡은 스트라이퍼가 13마리나 되었습니다. 내가 지난 10년간 잡은 것보다 더 많습니다. 이제는 낚싯줄을 감아올릴 때 내게 서슴지 않고 조언까지 합니다.

이렇게 해서 유빈이의 스트라이퍼 낚시 홀로서기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글 박성훈(브루더호프공동체 미국 메이플리치 거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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